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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Feb 27. 2023

[서평]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수고했어. 토닥토닥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선생님의 리뉴얼된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여러 에세이집을 읽으며, 이 책도 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무엇에 홀린 듯 책을 구매했고, 밤새워 이틀 만에 읽으면서 모든 페이지가 좋았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다소 혼란스러운 요즘, 제대로 된 조언과 위로를 얻었다.  나의 삶이 선생님의 삶과 조금은 닮아 있어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첫 부분에 인생을 숙제하듯 살아왔다는 말씀부터 그랬다. 나도 숙제하듯 살았다. 지금까지 쉴 틈 없이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했고, 취업하고 2년 만에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고, 육아휴직도 없던 그때 전쟁 같은 육아와 회사생활 속에서 2개의 기술사와 학위를 받았다. '올해만 지나면 돼. 여기까지만. 이것까지만......'


매년 쉴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21년째다. 남성 지배적인 분야다 보니, 나를 증명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를 극복해야했다. 업무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빈틈없이 사느라 허덕였고, 기술적으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자격, 경력, 학위를 갖추기 위해 더 허덕거리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흔들렸다. 그렇게 인정받고자 허덕였는데, 제자리다.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1. 마흔이란?


책에서, 정신분석가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마흔이 되면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기록된 과거의 책장을 넘겨보게 된다고. 그렇게 열심히 일궈온 삶을 돌아보다가,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성취한 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몰려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중년은 우리의 삶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라고.


딱 그랬다. 어쩌면 나는 당연한 인생의 한 지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랬다.



#2. 버틴다는 것


그렇게 버티어 온 내게 거부할 수 없는 '버틴다는 것의 정의'도 알려주셨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중략)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내는 것이고,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다.


 마치 꼭꼭 숨겨둔 나의 속마음을 읽어 주신 것 같아, 좋았다. 그저 좋더라.



#3. 용서


용서란 자신과 상대에 대해 품고 있던 이상을 접고,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중략) 애정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는 그에게 몰두했던 내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는 작업인 셈이다.


회사에 몰두했던 에너지를, 거두어들여야 한다. 인정받길 원했던, 순수하고 어린 나를 보내야 한다.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 나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교수가 제자인 미치에게 남긴 말 중에.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미치. 우리 자신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해.”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젠 뭐든지 괜찮다고, 나를 토닥이고, 수고했다고 다독여 주어야 한다. 편하게 살라고. 인정받을 필요 없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나도 선생님처럼, 후회할걸 뻔히 알면서도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유쾌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어른 노릇을 하고 싶었나 보다.


꿈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내가 바라는 자아와 현실 자아의 괴리로 인한 자아분열 인정. 선생님도 그러하시다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다 그런 거야. 현실의 나를 인정해! 어른답게 행동하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나를 다독이고 싶다.



#4. 따뜻한 충고



22년간 파킨슨 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


1. 단점을 애써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장점에 집중할 것.

2. 마이크로 월드를 발견하다.

3. 힘들고 아픈 시간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

4. 겸손을 배우다.

5. 유머의 힘은 역시 세다.



선생님의 깨달음이 공감된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들. 소중한 것들이니까.


단점보다 장점에 집중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단점만 커 보인다.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행복하자, 하다가 또 정신줄 놓고 집착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늘 되뇌지만, 현실은 현실. 지금 이 순간은 버티어내야 한다. 마지막 겸손과 유머는 삶의 모토다.


선생님의 깨달음이 더없이 따뜻한 충고로 와닿는다.



#5. 앞으로의 삶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수용소에서 조차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듯, 어느 때고 감탄할 만한 일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는 당신에게 삶과의 연애를 권한다. 삶과 연애해 보라!


이제 진짜 나와 연애를 시작할 시간이다. 글을 쓰고, 운동도 하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다. 아마도 전생에 황진이? (아닌 걸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가족은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가족에 대해 들어본 표현 중에, 가장 멋지고 있어 보여서 옮겨 적었다. .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유머를 사용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실을 인정하고 흘려보내며 그 상실과 슬픔을 잘 감싸 안기 위해 우리에게는 유머가 꼭 필요한 것이다. (중략) 니체는 말했다.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고, 그러니 맞서 이기는 게 아니라 유머러스하게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렇다. 유머. 멋진 어른으로 나아가는 필수템이 유머다. 니체의 말처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내공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싶다. 유머러스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다.


어쩌면 죽어 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그렇게, 카르페디엠 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며, 이젠 아등바등하지 않을 테다. (진짜?)



삶이 고민이라면, 읽어보시길. 각자만의 낚시질에 걸리는 물고기는 다를 테니. 나의 낚시질은 여기까지지만, 더 많은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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