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전해 들었던 길가메시 이야기가 기억나 책을 주문했다. 호메로스보다 1500백 년이나 빠른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하는데. 호메로스보다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서사시여서가 아닐까? 하는 편협한 추측을 해본다.
100여 페이지 밖에 안되지만, 참 강렬한 이야기다. 추가 100여 페이지로 설명된, 저자의 학문적 근거와 가치, 역사적 해석은 전혀 와닿지 않아 그냥 버린다. 그냥 내가 느낀 나의 서술로 서사시를 이해해 본다.
간단한 스토리는,
우룩의 왕인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으로 태어난 길가메시라는주인공이 있다. 넘쳐나는 힘을 감당 못해 백성을 괴롭히니, 신들이 그를 닮은 엔키두라는 연인을 만들어 그에게 보낸다.
천하무적 두 인물은 세상의 악으로 묘사되는 훔바바라는 괴물을 죽이려 모험을 떠나고,괴물도, 하늘의 황소도 모두 물리친다.
그러다,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둘 중 하나를 죽이게 되는데. 바로 연인 엔키두다. 길가메시는 7일 동안 밤낮으로 울고 난 후 엔키두를 보내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길을 떠난다.
죽지 않은 신들의 세계를 지나, 비밀을 얻기 위해 저승의 문 앞까지 도착하지만 유한한 인간의 삶을 상징하는 홍수이야기를 듣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영생은 오직 신들의 것이라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기승전결이 떠올랐다. 에너지 넘치던 젊음, 북한군도 도망간다는 중2처럼 길가메시도 철없이 산다. 그리고 엔키두를 만나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세상에 두려움 없었던 20대 젊음처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부딪혀 보고 싶은 그 시절 뜨거웠던 나의 심장처럼.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길가메시가 엔키두를 잃는 것은 삶의 고통이자 상실이 아닐까? 30~40대가 될 때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삶의 고통을 알게 되는 시기. 갑작스러운 주변인들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기.
이제 길가메시가 영원한 생명을 찾아 떠난다. 부쩍 노화에 두려움이 생기고, 삶의 끝을 인식하는 요즘. 생의 중반, 삶의 의미와 죽음을 고민하는 내가 길가메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길가메시처럼, 모든 인간은 그 마지막순간을 맞이하게 되겠지.
이런 서사시가 기원전 3000천 년 전에 쓰였다니! 인간삶의 깊은 통찰을 기원전 3천 년 전, 이러한 서사시로 노래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정말 인간이란 놀라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여담으로,
어제 건강검진을 했다. 눈도 시력이 떨어졌고, 귀도 썩 좋지 않고, 몸 안에 이것저것이 자라고 있으니 추적관찰이 필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두통이 몰려왔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 이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어찌해야 하나 우울할 때쯤의 하이라이트. 위내시경.
늘 그래왔듯 위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했다. 프로포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흠흠. 금방 지나간다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당당히 누웠건만.
위에 뜻하지 않는 염증이 있었고, 이를 제거하느라 시간은 길어졌고,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눈물이 범벅이 될 때쯤 끝이 났다. 이깟 염증이 뭐라고, 노화와 죽음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풋.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나이 들면 내시경은 반드시 수면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단 한순간도이런 일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게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네 삶.
길가메시 서사시를 적기에 주문했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일이 별거 아니라고, 길가메시 왕이 말해주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