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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r 27. 2023

[서평]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뻔하지 않은 연애소설

늘 베스트셀러를 지켜보는 나.


굉장히 오랜 기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던 연애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선행성 기억상실증. 연애소설의 스테레오 타입이라 해도 될까? 혹은 타임슬립. 일본 소설 특유의 뻔한 플롯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고등학생 연애소설이 계속 상위권에 있다. 거슬렸다. 뭔가 있다? 는 합리적인 호기심에 구매해 봤다.


아니, 그런데...


초판 204쇄... 라니...

(나도 이런 소설 한번 써보고 싶다. 204쇄!)





책장을 넘겼다. 뻔하다. 흔해빠진 연애소설이다. 뭐지? 자꾸만 화자의 시점이 바뀌고, 대화체로 진행되는 스토리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번역문제인지, 글이 그런 건지, 화자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고 단락단락 끊기는 부분이 있어 불편했다. 특히 표현도 단순해 작가의 필력에 점수를 주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한숨을 쉬며 대충 읽고 딸내미나 읽으라고 주려던 순간. 이야기의 중반이 넘어가면서 스토리의 반전이 시작된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SF소설도 아닌 연애소설에 이런 반전은 뭐지? 204쇄의 이유를 알겠더라.


정말 편견을 갖고 읽기 시작한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연애소설이다. 나의 기대를 뛰어넘는. 책장을 덮고도, 가슴이 술렁거려 서평을 쓴다.


고민이다. 어마어마한 반전을 스포 하면, 책의 묘미가 확 떨어지실 텐데. 어떡하나? 스포는 스포일뿐, 꼭 읽고 느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고2 히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게 된다. 매일 자고 나면, 사고 전 기억으로 깨어나는 히노. 자신의 일상을 수첩과 일기에 적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그 옆을 지켜주는 절친 와타야와 함께.


그러다 우연히 계약 연애를 하게 되고, 남자친구는 같은 학교 친구인 도루.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빠와 단둘이 사는 성숙한 아이다. 도루는 히노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친구의 병을 알게 되지만, 말하지 않는다. 여자친구는 수첩에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알 수 없으므로, 그렇게 매일 처음 만난 듯 사귀게 된다.


여기까지가 연애소설의 클리셰 같은 파트였다. 그런데 도루라는 인물이 매력적이다. 매일 리셋되는 기억으로 살아가는 여자친구를 보며, 매 순간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주려도루. 어둡고 무미건조했던 자신의 삶을, 히노를 돌봄으로써 진실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깨달아가는 인물이다.


삶의 감사함을 깨닫고, 고난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도루라는 인물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건강하고, 충분히 가졌으면서도, 더 갖지 못해서 매일매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평범한 삶에 파동을 일으켰다.


그 후, 히노는 병을 치유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데. 그 옆에 도루는 없다. 도루는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갑작스레 죽게 되고, 히노의 수첩에서 지워져 잊히지만. 우연히 발견한 도루의 그림을 통해, 히노는 옛 남자친구의 기억을 다시 되살려 간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난다. 클라이 맥스에서.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이 없다면, 삶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그럼 기억은 무엇일까? 추억할 수 있는 사건들?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을 서핑하는 것은 아닐 거다. 서로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서로의 음성을 듣고, 냄새를 맡고, 흩날리는 벚꽃을 함께 본 것들이 추억 아닐까? 너와 내가 있는 곳.


히노가 도루를 기억해 내는 여정에서 알 수 있듯 마음이,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추억이란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근원의 에너지 아닐까.


울컥거린 많은 장면을 삭제하고 뼈대만 써 내린 간단 줄거리다. 읽으면 더 많은 감동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도 히노를 걱정해 자신의 기억을 지우게 했던 도루. 그를 기억해내가는 히노의 노력을 읽다가 울컥하게 된다.



어쩌면 삶이란,


우리 가족 주말밥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웃으며 밥 먹는 것만으로 넘치게 행복한. 그런 기적을 쌓아가는 시간이 바로 인생인지도.


이 순간, 남편이 더 보고 싶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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