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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Apr 15. 2023

[서평] 인생의 역사

# 시를 읽는 법

인생의 역사라니. 거창해도 너무 거창한 것 아닌지 우려했으나, 책장을 넘기자마자 알았다. 최근에 만난 책들 중 손에 꼽을만한 고품격 시화집이라는 것을.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 설명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사골육수를 오래도록 우려낸 듯 깊고 깊다. 잘 띄워낸 된장맛이 난다.


시인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나에 대한 조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다.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시작은 탄생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빗방울도 조심할 만큼 스스로를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니까.


첫 번째 시. 공무도하가. 시를 읽어내는 과정이 비디오로 촬영된 영상을 따라가는 것 같다. 백수광부가 있다.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를 말리는 그의 처가 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어부. 그리고 낮에 본 이야기를 듣는 어부의 아내가 있다. 네 주인공의 시선과 감정을 상상하는 작가에게 완전히 빠졌다.


처음으로, 시를 읽는 법을 배운다.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사랑한다는 것의 무게를 느낀 구절이다.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 난 죽을 수 없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그렇구나.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었구나. 그랬다. 누군가의 죽음 끝에 남겨진 누군가의 고통을 알면서도, 이것을 연쇄살인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세월호가 생각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걸까. 왜 이렇게 착 달라붙는 느낌일까...


나는 아직도 홀로움(환해진 외로움)을 다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겪는 것이리라.


홀로움뿐만 아니라, 인생의 비슷한 이벤트도 자신이 겪어내야 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니, 모든 이벤트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것은 타인의 것일 뿐, 내가 겪어내야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더라. 그랬었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 지니까.....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너무 늦기 전에, 매일 쓰고 반복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죽음에 대한 것들에 대해.


읽는 동안, 알고 있던 사실을 엮고 의미를 부여하고 뒤틀어 보는 작가의 서술을 쫓아가기 바빴다.


'시는 쓰기 어렵다는데 인생이 이렇게 쉽게 살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본질적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이 문장은 어떤 것에 대입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어렵다는데, 인생이 쉽게 살아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와 같이. 


긴 인생을 짧게 줄여놓은 파노라마 영상을 볼 때면 으레 눈물이 흘렀다. 이미 살고 난 뒤에 되돌아보면 일생이란 저렇게 짧게만 느껴지겠구나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일생이란 결국 하루하루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왜 살고 나서 돌아보면 그 많은 날은 가뭇없고 속절없는가. 왜 우리는 그 나날들을 충분히 살아내지 못하는가


지금 여기, 깨어있기. 감사하기. 행복하기.


결국 행복한 하루가 쌓여야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거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행복하자. 내일이 상, 반드시 온다는 생각엔 근거가 없다. 아침에 눈 이 떠지면 기쁜 마음으로 감사해 보자.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 호흡을 느끼고, 뛰는 심장을 칭찬하며, 잠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질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남편을 사랑하는 일은 남편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너를 살게 하기 위해, 나는 존재해야 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더 아껴야 한다.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살리는 길이 너를 더 사랑하는 일이다.


작가의 고품격 시선을 쫒느라 버벅댔지만, 이런 글을 만나기 쉽지 않기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다시 읽고 싶다. 작가님의 다른 시화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절대 읽어내지 못할 시들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책을 덮고 나니, '인생의 역사'라는 제목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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