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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Mar 23. 2023

[서평] 황홀한 글감옥

# 작가의 본질


작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조정래 작가님의 자전소설이라 칭하는 '황홀한 글감옥' 첫 부분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글쓰기가 뭐길래 이리도 괴로운 것일까? 고민하던 때, 김똑띠 작가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스스로 20여 년 넘는 글감옥에 갇혀 대하소설 3부작을 써낸 조정래 작가님의 황홀한 이야기 책입니다.


작가님께 쏟아진 여러 질문에 답하는 구조로 쓰인 글에는 작가란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 삶은 어떠하셨는지, 마음, 태도, 작가로서의 생각 등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평생 대하소설 하나 쓰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3부작을 써내면서 겪은 여러 정치적, 개인적 고초도 드러나 있는데요. 웃기도 눈물짓기도 하며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를 이 시대의 산소'라 일컬으시며,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역사적 소명과 통일, 민족주의의 필요성을 언급하시는 부분에서 울컥했습니다. 요즘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작가가 몇 분이나 될까 싶은 마음, 큰 작가의 위엄이 느껴지는 사고의 깊이, 또 유머를 잃지 않으시려는 노력이 미소 짓게 만드는 책입니다.


글이 고민이신 브런치 작가님들께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혹은 조정래라는 작가가 궁금하신 분께도.



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가 의미심장합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면서도,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요즘 대하소설을 쓰시는 작가님도 없겠지만, 이렇게 삶이 역사와 함께 해 그 깊이가 남다른 분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문에 역사와 민족, 통일, 진실에 진심이시고, 그 진심이 와닿기에 특별한 느낌을 주시는 것 아닐지.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필사하게 하신 이유가 삶이 스스로 한발, 한발 걸어야 하는 천리길이란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인생이란 지치지 않는  줄기찬 노력이 피워내는 꽃이라는 것을 체득시키고 싶었습니다.


그 미련함. 그 미련한 노력의 성과를 깨닫게 하고 싶으셨다는데, 알면서도 너무 힘든 일이지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 글감옥에서 행복했다 하시니, 타고난 작가임이 분명합니다.


돌은 단 두 개. 뒷돌을 앞으로 옮겨놓아 가며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게 문학의 징검다리다.


또, 절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셨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자신의 특수체험을 써 등단하더라도 몇 작품 쓰지 못하고 쉽게 단명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대목에 뜨끔했습니다. 경험이란 것이 한계가 있는 법인데 말이지요. 브런치에 많은 이야기들이 특수체험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구나 싶습니다.


제가 가장 불행할 때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 얽혀  하루를 없애고  집으로 돌아올 때고, 가장 행복할 때가 글을 쓰고 있을 때입니다.


전 작가가 되기는 글렀습니다. 풋.



조정래 작가님의 대하소설 3부작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오래전에 읽어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한번 읽고 이해하기에도 부족할 뿐 아니라, 나이 들어 읽을수록 책에서 느껴지는 게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 요즘이 거든요.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역사의 주인이고 원동력인 민중의 발견, 민족의 비극인 분단과 민족의 비원인 통일의 자각, 민족의 현실을  망치고 미래를 어둡게 한 친일파 문제. 이세가지를 다 파악했거나 깨달았다면 당신은 만점짜리 독서를 한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읽을 때 참고해야겠습니다.



책의 마지막, 오랜 기간 글을 쓰느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 할아버지가 돼주지 못했다 하셨지만, 당신의 아내인 김초혜 시인이 손자한테 이렇게 말해주셨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사람이다. 할아버지처럼.



이 문장의 무게를 아시는 분...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세상을 다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매일 저와의 싸움에 지친 요즘입니다. 그냥 지고 싶다는 마음과 본전 생각에 흔들리는 마음. 무승부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아내에게 인정받으셨으니, 얼마나 치열했을지 그저 대단한 분이구나 생각됩니다.


요즘처럼 자본 제국주의시대에 사상을 잃고, 물질에 취한 세계적인 (촌스런?)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쓸 때 없이 진지하고 재미없는 저는, 재밌게 그리고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책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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