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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Apr 03. 2023

인공지능 VS 작가의 글쓰기

# 글 향기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 당혹 그 자체였다. 불륜의 감정을 단순하고 건조하게 써내려 간 50여 페이지 단편소설인데, 이게 소설인가? 작품인가? 뭐지?


소설만큼 긴 작품 해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하층계급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로 성공한 그녀는 동경하던 상류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마주한 가식들.  그래서 그녀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성 작품을 쓰게 된다. 자전적인 글을 말이다.


특히 이 작품은 프랑스 문학계에서도 혹평을 받고 무시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그녀의 작품이기에, 머나먼 한국에 사는 나는 이 소설을 읽는다. 그것이 거장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이 이 작품을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느 TV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미래에는 작가라는 직업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작가처럼 쓰는 인공지능 소설가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는다고 했다. 죽지도 않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과 같은 상실감을  알 수 없는 기계의 작품이기에. 또, 우리가 인간의 예술을 좋아하는 것은 기계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공감된다.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 싶은 마음에 우린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겪어보지도 못한 아픔을 말하는 인공지능의 글에 몰입이 아니라, 짜깁기 솜씨에 평가를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책을


고를 때는 작가의 약력을 먼저 본다. 넘쳐나는 책들, 출판의 홍수 속에 나름 옥석을 가리기 위한 방법이지만, 항상 옳지는 않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훑게 된다.


아마도,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쁨과 환희의 감정은 단순히 책을 조우하는 것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 책의 저자와 만나는 설렘이다.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책을 읽다 보면, 지식서적 일지라도 작가의 삶이 묻어난다. 작가의 어투와 시선에서 작가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것이 책을 읽는 이유다.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는 내가, 수백 번의 삶을 대신 경험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책이다.


내겐.



이런 소중한 추억도 있다. 회사에 북 콘서트로 김상욱교수가 왔었다. 그 기다림의 설렘이 지금도 느껴진다. 생각보다 작은 키와 왜소함에 놀랐지만, 콘서트 내내 김상욱 교수를 오래 알아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무 좋았는데, 앞자리 앉으신 제일 높으신 처장님은 졸고 계셨다는. 풋. 관심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그 후 직접 사인도 받아 보관 중인 김상욱 교수님의 책.


김교수-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프로-이준성입니다.

김교수-아드님 이름인가요?

이프로-아니요. 제 이름입니다. 하하하.


김상욱 교수님과의 에피소드. 바로 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왜 자신의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워하시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권의 책에 받는 사인. 인증샷.


결론적으로, 


김영하 작가님의 명쾌한 말씀처럼, 아무리 인공지능이 글을 잘 써도 삶이 있는 작가를 대신할 수는 없다.


글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향기를 맡는 것도 글을 읽는 행위이니까.


아니 에르노라는 노벨문학상 작가의 소설도 마찬가지다. 무명의 작가가 그런 글을 썼다면, 출간자체도 되지 못했을 거다. 출판사에서는 정중히 거절하시며, 필력을 더 키우라는 야멸찬 조언까지 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 문학에 한 획을 그은 그녀의 일탈은 새로운 장르와 시선으로 여겨진다. 나도 그녀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고 나니, 소설이 다르게 느껴짐을 느꼈다. 급 좋아지려는 마음까지 들었다.


예술이란 그런가 보.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림보다, 비극적 그의 생애더 이끌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챗GPT가 완벽한 예술을 선보여도, 인류는 사람의 향기를 선택할 거다. 부족할지라도.


 그렇게 믿는다.




여러 작가들의 아픔과 고난이 글의 주제가 되어 브런치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작가님들의 아픔에 함께 몰입되어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읽게 된다.


조정래 작가님은 개인의 경험을 작품의 소재로 삼지 않은 철칙이 있었지만,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님은 철저히 자신의 경험만을 솔직하게 써내는 작업을 평생 해 오셨다. 답은 없다. 늘 글쓰기가 고민인 나에게, 아니 에르노 작가가 파동을 일으켰다.


브랜딩. 나의 글쓰기에 정의가 필요한 것 아닐까? 넌 누구니? 네가 쓰는 글은 목적이, 의미가 뭐야? 정말 왜 쓰는 거야? 어떤 글이 너랑 어울리겠니?


모르겠다. 첫 번째 질문부터 답을 못하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늘 환영한다고, 동료를 반기는 유일한 직업이 작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진입은 쉽지만, 오래도록 살아남는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든 직업이 작가다.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역시. 글쓰기는 취미로 해야겠. 풋.


하지만, 계속될 고민이라는 걸 .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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