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프로 May 30. 2023

고3 아들과 무심한 엄마

# 아이마다 가진 그릇이 다르다.

인생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삶에서 특별히 중요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법륜스님 팟캐스트 중에서-


아침 등굣길,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요즘 뭐 즐거운 일 없어? 학교는 어때?"


아침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툭 던진 질문이었는데, 아들이 대답했다.


"학교요? 죽을 맛이죠. 애들 다 힘들어해요. 그중에 제가 제일 죽을 맛이고요."


순간 당황했다. 앗. 잘못 건드렸다.


"왜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가 얼마나 바닥인지, 제 수준을 깨닫고 있어요."


헉.


"엄마는 그것도 네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그것도 큰 배움이야. 그걸 알고 앞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면 되지 머~"


대충 얼버무리며, 노래를 불러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그런 의미가 있죠~"





한 동안 공부를 접었던 아들이,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등급을 상위권에 올릴 능력이 있다고 믿던 아들이,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접었던 시간만큼 회복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니까. 자꾸만 자신의 한계와 현실을 마주하며, 침잠에 가는 아들이, 난 걱정되지 않는다.


괜찮다.


난 괜찮다고 생각한다. 공부가, 대학이 전부는 아니니까. 살아보니 그렇더라.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길.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어른이 되길. 하고 싶은 일을 진실되게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아들이 그런 어른이 될 거라 믿기에 괜찮은 거다.

(정신승리, 자기 합리화라 해도 상관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배운 것은, 


아이마다 각자의 그릇이 있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는 시기는 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독려하지 않는다. 스스로 때를 알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건강한 어른이 되어갈 거다.


주말 저녁,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나눈다.


"(남편) 여보~ 와인 꺼내와~"

"(아들) 동생~ 우리 와인도 꺼내와~"

"(남편) 너네 와인은 뭔데?"

"(아내)아휴~ 우유잖아. ㅋㅋ"


"(아들) 아빠, 저기 있는 와인들 없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가 다..."

"(남편) 아빠 와인을 누구 맘대로?"

"(아들)아~  같이 마시겠다는 거죠. 하하."


실제 대화는 더 생동감이 있지만, 글로써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은 청소를 하고 밤이 되어간다.


두 아이 고3, 고2  맞다. ㅋㅋ.


너무 무심한 엄마인지 모르겠다. 녀석이 성적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를 던질 때면 툭 한마디 던진다.


"괜찮아~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되지."


깊은 대화는 피하고 본다. 특히 '오늘이 수능 며칠 남았어요.'라고 할 때는 '알았어.' 정도로 마무리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예민한 아이에게, 엄마의 걱정과 불안까지 얹고 싶지 않다. 그냥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아이도 좀 편해지지 않을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데는 정말 답이 없다. 아이마다 기질과 성장배경이 다르므로, 감히 어느 누구에게도 선 넘는 조언을 할 수 없다. 다만, 그럴 뿐이다. 


가끔 녀석이 예민하게 굴면, 한 마디씩 한다.

 "아들~  요즘 좀 예민해진 거 같아~"

그러면 아들도 대답한다.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고3이라고 특별할 거 없이, 무심하게 지내고 있다. 고3 아들보다 더 바쁜 엄마로, 아들의 수험생활을 잠시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 다행이다. ㅋㅋ.


오늘 와인을 마시면서도 말했다.


네가 뭐가 돼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면 돼.


그렇게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이상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행복은 나중에 얻는 게 아니다. 지금 행복한 순간을 보내야 행복한 삶이 되는 거다. 대단한 거 없이, 밥 한 끼 함께 먹는 순간부터. 고3도 예외는 아니다.


삶에 특별히 중요한 건 없으니까.



그냥 오늘 하루가 소중하면, 행복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살자. 아무렇지 않게. 편안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