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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Jul 11. 2023

납량특집

# 건설현장 그리고 비

비가 옵니다.


여기가 남태평양에 떠 있는 섬도 아닌데, 스콜처럼 비가 옵니다. 퍼붓듯이. 물통을 쏟아붓듯이. 비를 맞으면 멍이 들것처럼 아프게 비가 내립니다.


그러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폭염이 이어집니다. 내린 비가 공기 중 습도로 변해 찜통이, 이런 찜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정신없는 날씨가 매일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연도 정신줄을 놓은 것 같습니다.


지난밤, 새벽 4시부터 내린 비와 번개, 천둥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저는 빗소리에 초예민입니다.

- 어디 또 터진 거 아냐?

- 어디 침수된 데는 없나? 넘친 데는?


안절부절입니다.


역시, 다음날 아침 사업지구 여러 곳에 피해가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민원이 발생했습니다. 온 부서가 피해현황 파악과 민원 해소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비가 옵니다. 아직 땅에 물이 가득한데, 또 퍼붓습니다. 터진 데가 또 터집니다. 복구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흙이 물을 삼키면, 흙이 아니라 똥물입니다. 최악의 물이요. 욕은 넣어두겠습니다.


제게 비는 납량특집입니다. 이런 납량특집이 없습니다. 현장은 올 스톱입니다. 비설거지만 하고 있습니다. 사고만 없어도 다행입니다.


내일도 걱정입니다. 이 납량특집은 태풍이 지나가야 끝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슈퍼가 돼 가는 태풍,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슈퍼태풍이 요즘은 매번 올라옵니다. 무섭습니다. 처녀귀신 저리 가라입니다.


더 무서운 건, 내년 그리고 내후년... 지구가 아픈 만큼 기후변화는 더 급변할 거라는 현실이지요.


지칩니다.


이 납량특집 그만보고 싶습니다.


기술사로서, 시간당 강우량이 요즘처럼 세지고, 반복되면 국내 지반 중에 유실(혹은 붕괴)이 일어나지 않을 지반은 없습니다. 단지, 지질, 지형에 따라 유실(혹은 붕괴)의 정도와 영향범위, 피해 수준 등이 다를 뿐입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강우가 단기간에 집중되면서 홍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반시설 처리용량을 초과하니까요. 기존에 구축된 기반시설은 지금 기후변화까지 예측해서 건설된 것이 아닙니다. 고민이 크지요.


정부도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빼고요. 그분은 잘 모르실 것 같네요.) 각종 재난사업 및 기준수립, 빅데이터 수집 및 예고체계 도입 등 일선 공무원 분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 노고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만약 제가 문학을 전공했다면,


- 비가 오네. 좋다. 시원하게도 오네. 이힛

- 비도 오는데 영화나 볼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비에게 말합니다.


- 1단계  :  아~  비 온다. 얼마나 올려나?


- 2단계  :  조금만 천천히 와 줄래? 제발.

(한 시간에 울 거, 하루종일 조금씩 나눠서 울면 안 돼? 펑펑 울지 말고, 한 방울씩 천천히!) 


- 3단계 : 아띠. 그만 좀 오면 안 돼?



건설현장에 있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비와 줄다리기하며 산답니다. 왠지 그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보내고 싶네요. 지금 우리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연과 맞서고 계신 그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니까요.


오늘 문득, 비 걱정 없이 살면 좋겠다 싶습니다.  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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