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사례 1. 토목시공기술사

# 최연소, 최단기(3개월) 합격

by 이프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2002년만 해도 대기업 입사가 저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삶이 안전한 궤도에 안착되었으니, 그저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이 엔지니어로서 성장하기에 너무나 척박했어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육아와 가사, 직장에서의 역할 모두 버겁기만 했습니다.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갖기도 힘들었고, 엔지니어로서의 성장은 바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시간을 버티어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두 아이를 현장감독을 하며 낳았습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 나이 어린 감독도 마땅치 않을 고된 현장에서, 나이 어린 여성 엔지니어는 더욱 못 마땅했을 겁니다. 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넘치는 파이팅으로,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현장에서 멋진 반격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그게 기술사 취득이었어요.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여성 직원이 아니라, 건설업에 몸담은 엔지니어로서 존중받고 싶었습니다. 어렸던 제게 그 자격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이, 저에 대한 자존감이 필요했습니다.


2008년 당시 기술사 학원의 메카였던 용*기술사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냥 무조건 학원부터 다니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지식도 한참 모자란 제게 학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학원시스템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었으며, 저와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먼저, 각 공종별 강사님이 달랐습니다. 매 수업마다 다른 강사님들이 자신의 경험과 방법을 담아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이 시스템이 누군가에게는 체계적이지 않거나 혼란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접할 수 있어 저는 좋았습니다. 또한 장판지라고 하는 핵심노트를 쓰고, 외우게 했습니다. 숙제를 내주었고, 매주 숙제를 해가지 못하면 벌금을 냈습니다. 숙제는 매주 배운 챕터 전체를 기술사 답안지에 필사해 오기였습니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양이었습니다.


시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쉽게 지칠 수 있었던 제게 벌금제도는 자존심과 같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숙제를 빠뜨린 적 없던 성실한 학생이었던지라, 새벽 2~3시를 넘겨가며 학원 숙제를 했습니다. 그때당시 두 아이가 1, 2살이었어요. 집에 와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고 나면 밤 10시 전후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만의 시간으로 숙제를 했습니다. 아니 공부를 한 거죠. 그냥 필사가 아니라 요약정리하는 저만의 필사였으니까요. 고3시절보다 더 힘들게, 더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당시 왕복 4시간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 꿀같이 달콤한 저의 수험시간이었습니다. 출근시간은 부족한 잠을 보충했고, 퇴근시간은 음성파일로 동영상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이버강의 중에 서*기술사학원의 동영상강의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현장강의가 주력인 시대에 온라인강의로 앞서 나갔던 학원이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지하철 퇴근길에 반복적으로 들었던 강의가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어, 용*기술사학원의 틀에 갇히지 않고 저만의 답안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3개월간의 치열한 수험생활 끝에 시험을 봤고, 합격했습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길어졌다면 포기할 만큼 영혼을 갈아 넣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이미지는 24평 아파트, 저의 책상은 식탁이었습니다. 식탁 앞에서 공부하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어갈 즘. 저를 비추던 노란 형광등 불빛. 무조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곱씹었습니다. 이 과정을 다시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한 만료기간이 기술사 시험일까지였기 때문에, 저에게 '다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숙제를 통해 공부를 하게 만들었던 학원 시스템 덕분에, 바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인근현장 소장님과 함께 시험을 치렀는데, 오랜 기간 준비하신 소장님은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시험에는 전략이 필요하니까요. 독학을 하시던 소장님은 경험과 지식이 훨씬 많으셨겠지만, 시험은 그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합격하는 거잖아요. 좋게 시험전략을 일찍 간파한 저는 단기간 합격이라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전략은 시험 부분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답안 레이아웃 잡는 방법을 깨우친 것인데요. 다른 수험생 답안지를 5초 안에 채점을 메기는 연습을 시킨 학원시스템 덕분이었습니다. 수업 중 답을 작성하게 한 후 답안지를 앞뒤로 돌리면서, 채점을 하는데 어떤 답이 보기 좋은지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더라고요. 바로 깨달았습니다. 답안의 틀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요.


1차 필기를 합격하고 나니, 2차 면접시험이라는 더 큰 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때 용* 학원은 풀코스 지원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스마트폰도 없던 그때 학원스태프가 면접장소 근처 카페에 하루 종일 대기하면서 면접질문을 귀동냥했었지요. 오전 면접 수험생들이 시험장에서 나오면 면접질문을 귀동냥했습니다. 카페에 대기 중인 오후 면접자들은 혹시라도 나올지 모를 질문에 답을 머릿속에서 정리했습니다. 같은 질문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지만, 시험 전까지 카페에 대기하면서 귀를 쫑긋했었습니다. 15년 전일입니다. 그런 시절도 있었지요. 추억이 되었습니다.


정말 운 좋게 면접을 바로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단 한 번도 면접을 한 번에 통과한 적이 없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2008년 서울신문 스크랩


최단기, 최연소 기술사라는 타이틀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동시에 제가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 그러나 명함에 토목시공기술사를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 자격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기술사 공부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 당시 합격의 기쁨도 잠시, 제 성취가 부끄러웠고, 뭔가 허전했고, 불안했습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에, 내실을 채울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토목기술자가 되기 위해 큰 뜻을 품고, 이 업에 몸담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기술사 공부를 하면서 토목공학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토질 및 기초기술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keyword
이전 04화동기부여 3. 인생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