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욕망: 머니 러시

feat,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by 이프로

매년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를 읽는다. 사회 전반의 변화 흐름을 빅데이터와 명쾌한 논리로 정리한 책은 나의 지적 갈증에 항상 만족감을 주었다. 올해 키워드를 읽다가 글이 쓰고 싶어졌다. 2022년 두 번째 키워드가 '머니 러시'였다. 우린 자본주의 사회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가슴 한편 답답함이 밀려온다. 투잡, N잡, 레버리지, 파이프라인 다 좋다. 하지만 돈을 좇는 그 이유가 각종 SNS를 통한 소비의 기준이 올라가 소비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환경이 팍팍해진 것도 있지만.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러 잡을 갖고, 돈을 벌어 타인의 욕망에 따르는 화려한 소비를 하고, 또 일하고. 이 무한 반복되는 소득과 소비의 고리에 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것일까?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될까? 최근 핫한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정대리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부자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정대리는 금수저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별 그램을 보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정대리 스토리의 킬링 포인트는 정대리가 그리도 열망했던 금수저 중에서도 금수저였던 친구의 자살이었다. 욕망할 것이 없는 사람의 마지막을 극단적인 에피소드로 그려내었다. 어찌 보면 욕망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의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다만, 욕망의 방향이 문제다.


며칠 전 친구가 수백만 원짜리 백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는 패션에 관심이 많고, 그러한 소비로 인해 만족을 얻는 친구다. 근데, 나에겐 그런 욕망이 없다. 미안하게도 함께 공감해 줄 수가 없었다. 소비보다 머리에 좋은 글을 채우고, 전문분야를 공부하면서 얻는 자아의 성장이 내 욕망의 대상이다. 내적으로 자아가 충만하다면 굳이 외적인 화려함이 필요할까? 고루한 난 그런 생각을 한다. 월세를 받는 상가도 있고, 전세를 내준 집도 있으며,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옷은 홈쇼핑에서 시즌오프 할 때나 아웃렛 행사 매대에서 대충 사 입는다. 정말 색깔만 다른 같은 옷도 많다.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가진 자의 여유라거나, 있으니까 그렇다고 비난할까 걱정되지만, 없을 때부터 그렇게 살면서 돈을 모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뿐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자아였지, 타인의 욕망이 아니었다. 그래서 별 그램도 안 한다. '견물생심'이라고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다.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으면 안 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알랭 드 보통이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접하며, 이 작가의 섬세한 시선에 매혹당했었다. 그 작가의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철학의 위안'이다. 오늘 그 책의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챕터를 소개하고 싶다. 쾌락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진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다. 고루한 고대 철학자들 사이에 감각적 쾌락을 강조했던, 유별난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생각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키워드다. 첫 번째가 우정, 두 번째 자유, 세 번째 사색 그리고 최소한의 의식주. 정리하면, ‘만약 우리에게 돈은 있는데 친구와 자유, 사색하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부는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와 자유, 사색을 누린다면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쾌락주의의 대표주자로 알고 있던 에피쿠로스가 추구했던 삶이 이렇다니, 난 솔직히 놀라웠다. 나에게 이 문장이 살포시 다가왔다. 부라는 것이, 그리도 쫓고 있는 돈이라는 것이 한계효용이 있는 재화인데, 사람들은 끝없이 쫓아가기만 한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할 거라 착각한다. 필요 이상의 부는 물이 흘러넘치는 물동이에 붓는 물만큼 소용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잠시 멈춰보자. 돈이 안겨주는 행복엔 한계가 있다. 여러 경제적 환경 악화와 100세 시대 '장수'라는 새로운 변수 때문에 너무 money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밖에만 보느라 안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10년 전쯤 텐인텐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10년에 10억 벌기. 재테크에 관심 있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 카페에 가입했을 거다. 그땐 10억 정도면 노후까지 충분하다 생각했다. 지금 충분할까? 아닐 것이다. 앞으로 세상은 계속 바뀌어 간다. 화폐의 가치는 또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감소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자신의 기준. 자신이 검소한 삶으로 만족하는 수준의 돈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매사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별심을 내면 결국 괴로운 것은 본인이다. 비교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만족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밖에 있지 않다. 바로 내 안에 있다. 다음의 어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삶의 본연의 목적이라는 잣대로 측정하면, 빈곤은 거대한 부이고 무한한 부는 거대한 빈곤이다’

-바티칸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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