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만족: 득템력
feat,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머니 러시에 이어 트렌드 코리아 2022 세 번째 키워드 '득템력'을 읽다가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그렇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가? 어느 날 참지 못하고 금권에 매몰된 현실을 한탄하는 순간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이런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다 보니 진짜 모르겠다. 극 소수나 한정된 세대의 이야기를 전반적인 한국인의 트렌드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나 대중화시킨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득템력! 이란 흐릿한 잉크 전략이란다. 과거 신분제 시대에는 신분의 과시를 위해 그들만의 언어, 에티켓, 고급 취향 같은 교양으로 타인과 구별 지으려는 '보이지 않은 잉크 전략'을 추구했다. 이후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재력의 과시를 대놓고 하는 '보이는 잉크' 시대가 출현했다.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등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그런 전략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심플했다. 지금은 사치의 대중화 시대란다. 재력도 있어야 하지만 트렌드에 대한 이해력까지 과시하는 희소한 제품, 리미티트 에디션으로 대표되는 희귀품을 득템 하는 게 부를 과시하는 방법이란다.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이 걱정스러워진다. 진짜 그런 이들이 많을까? 그렇게 부자가 넘치는 대한민국인가? 노후를 걱정하는 대다수는 누구인가? 집값 상승에 고통받는 대중은 어디에 있냐는 말이다. 정말 모르겠다. 이런 트렌드에 맞는 상업 전략이 헝거 마케팅이란다. 헝거게임도 아니고, 헝거 마케팅이라니. 너무나 지나치고 자극적인 용어에 정말 어질어질하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한 말로 색이 공이요, 공이 곧 색이란 말이다. 의미는 세상에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나무라는 것도 흙에 씨앗으로 있다가 성장하여 나무가 되고, 이 또한 늙고 죽으면 태워 사라지니, 세상의 물질적 현상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인연에 따라 변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물질에 대한 모양과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어려운 말을 감히 꺼내는 이유는 그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이 도대체 나라는 실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이키에서 유명 연예인과 콜라보한 신발이 있다. 신발의 본질은 발을 보호하여 신는 데 있다. 모셔두고 보고 만족하는 게 신발의 본연의 기능이 아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신을 수 없는 신발,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가방, 세탁이 어려운 옷 도대체 주객이 전도된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워진다. 모양과 형상에 집착해 본질을 잊고 사는 것들이 안타깝다. 그게 무엇인가? 수천만 원짜리 운동화를 신고 다녀도 나처럼 모르는 사람이 지나다가 밟기라도 한다면, 사람이 우선인가? 신발이 우선인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란 책을 들어본 적 있을까? 유토피아, 삶의 이상향. 극락세계. 천국. 모두가 행복한 삶의 공간 이런 단어들을 연상하게 되는 단어가 유토피아다. 실제 유토피아를 읽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유토피아는 16세기에 토머스 모어가 영국 귀족, 왕족의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해 쓰인 공상 소설로, 그들을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토머스 모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모두가 함께 노동하고, 함께 즐기며, 성실하고 검소하고 소박한 인간 본연의 가치를 공동체가 함께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담겨있다. 공무원은 노동할 필요가 없지만, 동료 시민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그 특권의 혜택을 받지 않으며, 의복 또한 최소한의 노동이 드는 아마포를 사용해 망토 한벌로 만족하는 삶을 산다. 많은 옷을 갖는 다고 추위를 더 잘 막을 것도 아니고, 조금도 멋지게 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꼭 필요로 하는 일 말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정신적 자유와 교양의 함양에 전념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에 삶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압권인 장면은 타 국가에서 사절단이 왔는데, 비단옷에 금 목걸이, 귀걸이, 보석 등의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왔을 때였다. 아이가 엄마에게 묻는다.'저 다 큰 촌뜨기 좀 봐, 엄마 아직도 꼬마같이 진주나 보석을 달고 있어요.' 엄마가 말한다. ' 조용히 해, 애야, 저 사람은 아마 사절님의 어릿광대일 거야.' 유토피아에서는 노예를 처벌하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욕보이게 하기 위해 그런 물건들을 썼다고 한다. 즉 화려한 의복이 존경받지 못하며, 비단은 경멸의 대상이며, 금 역시 수치의 표식이었다. 이게 토머스 모어가 추구했던 유토피아다. 외적인 화려함과 모양, 형식에 집착한 행복과 만족이 아니라, 내적인 자유와 교양의 함양이 행복의 원천이었던 굉장히 정신적인 세계관이었다는 의미다.
행복과 만족은 절대 밖에서 찾을 수 없다. 이 종교, 저 종교를 찾아 빌어 본다 한들 그 또한 허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이 또한 경제의 급격한 성장에 한 단면이고 시대적인 일시적 현상일 거라 생각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일상의 모든 것이 기록되는 지금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충고한다. 결국 어디서든지 증거는 나오게 되어 있다고. 그리고 우리의 젊은 MZ세대는 공정의 가치를 외치고 있다. 이런 사회변화 흐름 속에 우리가 추구하는 금권의 가치도 차츰 변해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지혜를 얻을 거라 믿는다. 잠시 갑작스러운 사회변화와 경제성장에 혼란한 단면일 거라 믿는다.
나도 20대 일 때 샤넬백 하나 갖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 들어가면서 그 비싼 백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두를 수 있을 때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마주쳤던 백발의 노부인이 소소히 걸친 고급스러운 옷과 브랜드를 알 수 없는 가방,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묻어나는 평소와 같은 자연스러움, 한 없이 고급스럽지만 절대 꾸민 티가 나지 않은 그 노부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부인의 옷과 가방이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꾸민 티 나지 않은 소소한 옷차림 속에서도 묻어나는 기품, 얼굴의 평온함. 진짜 부자의 모습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라는 것은 과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더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일 뿐이다. 진부하고 고루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를 돌아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헛 것을 보고,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을 추구하면서. 그러면 사소한 미소에 행복해질 수 있다. 만족은 타인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찾는 거다. 지금의 레이스는 자아를 잃어버린 이들의 그들만의 리그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노화된 그 그룹만의 리그. 힘들면 나오면 된다. 마치 요즘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 속 플레이어들처럼 느껴져,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