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결핍: 결핍의 결핍에 대해
feat, 다윗과 골리앗
근래 결핍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을까? 아니면 스치듯 생각이라도 해 본 적 있을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입버릇처럼 하게 된 말이 결핍이 결핍된 세대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금,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자본만 있으면 쉽게 채워진다. 더 이상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갈고닦는 시간들이, 인내의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아 졌다. 아주 작은 성취의 가치가 사라졌다. 그래서 쉽게 얻은 재화들은 쉽게 버려지고 있다. 그 작은 성취를 위한 애씀이 없었기에 소중함을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쌀 한 톨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농부들의 노고를 매끼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밥그릇에 밥을 남기고 버리는 일이 없다. 농부의 땀에 젖은 검게 그을린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다.
살다 보면 자본으로 채울 수 없는 많은 일상과 감정, 능력들이 많은데 풍요는 인간의 소중한 여러 가치를 앗아갔다. 마치 세상을 헤쳐 나가는 용기와 패기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만 같다. 내겐 어렸을 때 겪었던 결핍이 나의 자산이 되었다. 결핍이 있었기에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생겼고, 그것을 갖기 위해,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과 인내를 키울 수 있었다. 시골마을, 모두가 결핍되었던 시절엔 그 결핍을 공유하며 서로 의지했고, 희망을 나누었다. 그 충분하지 않음이 뭔가 이뤄내고 싶다는 원동력이 되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 힘든 노동을 견뎌내셨던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도 깊이 새겨졌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가치를 깨우쳐 주고 싶었다. 결핍이 주는 삶의 원동력들을 부모로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며, 아이들과의 갈등 속에서 나의 과오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이 원하기도 전에 장난감을 사주었고, 무엇이든 배우게 했고, 여러 경험을 쌓게 하겠다고 데리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뭔가 결핍으로 인한 욕구를 갖기 전에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던 엄마의 욕망이 아이들을 넉다운시켰다.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엄마인 나의 욕심이었다. 많이 사주고 싶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좋은 것이라면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던 엄마의 욕망이, 결국엔 결핍이 결핍된 아이를 만들었다는 것 말이다. 그때는 좋은 엄마가,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이기적인 엄마였다.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엄마가 원해서 뭐든 해 주었다.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 간절한 욕망이 없다.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자아가 스스로 원하는 뜨거움이. 온실 속에 화초처럼 현재에 만족하며, 성실과 인내, 가치라는 단어를 도덕 책에 나오는 단어라며, 구닥다리 취급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풍요로운 힙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거짓 결핍을 줄 수도 없다. 말콤 글래드웰 작가님의 책, 다윗과 골리앗에 보면, 자수성가한 부자 부모들이 자신의 부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독이 되는 것을 고민하는 내용이 있다. 결핍에서 느꼈던 삶의 가치들이 부모의 부유함으로 인해 그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든 단어가 되는 딜레마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황폐해지기도 하지만 부유해서 황폐해지기도 하다고 말한다. 야망, 자긍심, 자존감을 잃기 때문이라고. 더 많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고. 부유함에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씨앗일 들어 있다고. 결국 부유함에도 적당한 선이 필요한거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비슷하다. 부자는 아닐지라도 보편화된 물질의 풍요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소중함과 간절함이라는 단어를 삭제했다. 근면함, 독립성 이런 단어들도. 그 점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런 아쉬움을 큰 아이 담임선생님과 상담 중에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니,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좋은 음식 먹는데 어떻게 결핍을 알겠어요.’라고.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과거 결핍된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아이들이 결핍을 알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그 결핍 속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위해 인내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진정성 있는 삶의 가치를 알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성취했을 때 기쁨과 환희를 느끼고, 또 다른 꿈을 소망하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작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