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교: 흥부네 가족
가난해도 가난을 모른다는 것
(사진 : 인간극장 흥부네 가족사진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산아제한이라는 것을 했다. 생산량이 부족하니 소비량을 줄이려는 단편적인 속내였다. 60년대 셋만 낳자고 하더니, 70년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쳤다. 하지만 그런 정부 기조와 상관없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셨던 나의 부모님은 슬하에 3남 4녀를 두셨다. 그중 나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주변 친구들은 형제가 둘 뿐이었는데, 나만 가족 사항 공란에 7칸 형제 이름을 다 적어야 할 때 너무 창피했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도, 가족이 많은 것도 싫고 부끄러웠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형제가 많다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일곱 자식을 길러내신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었는지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두 아이만으로도 이렇게나 지치는데, 일곱 자식 먹이고 입히는 것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많은 일을 어찌하셨을지 짐작도 안된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의 형부는 우리 집을 흥부네 가족이라 불렀다. 그 표현이 너무 정확해서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다. 우리 가족은 정말 흥부네와 비슷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셨고,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도 형제, 자매뿐이다. 정말 그뿐이다. 그 덕분에 일곱 형제는 모두 열심히 살았다. 성실이 모토였다.
우연히 회사 동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에서 자란 그녀가 집안 형편 때문에 얼마나 주눅 들어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래도 광역시에서 그 정도 집에 살았다면 나보다 더 훨씬 잘 살았을 텐데, 왜 그렇게 기죽어 살아야 했을까? 안타까웠다. 모든 기준이 상대적이다 보니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가난해 보일 수도 있겠지.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게 중요한 세상이니까.
그때 들었던 생각이다. 나의 유년시절, 시골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살다 보니, 서로가 가난해도 가난하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것이 아닌지. 인터넷, 컴퓨터, 게임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저 산과 들 그리고 개천을 휘저으며, 철없이 행복했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남과 비교할 필요 없던 환경이 얼마나 축복이요, 행복이었는지 말이다.
과거 봉건제 농노의 삶의 만족도가 지금 보다 더 나았을 거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영주를 제외한 모두가 비슷한 노동을 하며, 비슷한 삶을 살았기에, 비교 대상이 없는 그들이 오히려 행복했을 거라는. 나처럼 가난해도 가난을 모르고 살았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요즘 너무나 많은 정보를 쉽게 접하고, 라이프 로깅 메타버스 세계를 통해 남과 늘 비교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재의 우리가 불행해진 이유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금은 정말 감사하다. 아무 가진 것 없이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나의 유년의 추억이 있어서. 그런 소박한 추억이 남아있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와 같이 클 수 있다면 좋겠다. 구김 없이, 남과 비교할 일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랄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