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진정성: 진정성은 다시 유행할 거야
feat,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3
요즘 들어 진정성이란 단어가 좋다. 진정성 있게 살고 싶다. 너무나 진부해진 단어가 돼버린 탓인지, 그 단어가 더 좋아진다. 왜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그리 진부한 말이, 공허한 말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기만 해도 나이 든 사람, 보수적인 사람,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어려운 단어인데, 가끔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이는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폄하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불필요한 생각이 많아서 그렇다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의 기준에서 날 평가한다 치더라도 상관없다. 난 그렇게 살고 싶은 인간이다.
좋아하는 영화 중에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시리즈가 있다. 르네 젤위거의 영국식 발음이 매력적인 영화라 영어 공부하려고 참 많이도 보았다. 개인적으로 1편을 가장 선호하지만, 오늘 하려 하는 이야기는 최근 개봉한 3편의 이야기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브리짓은 Hard News PD다. 뉴스 제목부터 어렵다고 나올만하니 얼마나 진지한 뉴스였는지 짐작이 간다. 브리짓은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과 성취가 있었으나, 새로운 젊은 팀장이 부임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한 하드 뉴스가 너무 올드하다고 질책한다. 자극적인 타이틀을 제시하면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언론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브리짓은 해고 통보를 받게 되고, 젊은 팀장과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브리짓은 지금 가볍게 소비되는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 먹은 점심을 인스타에 올리지 않는 자신을 올드하다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바는 미디어의 진정성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자신의 아이가 성장했을 때, 진정성이 다시 유행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떠난다.
“Integrity will be fashionable again~”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그 대사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고, 삶의 태도도 바뀌어 왔다. 항상 똑같은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진심을 다해 살고 싶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오면 누군가는 진심을 알아줄 거라는 순수한 생각과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아니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알아주면 되니까.
박사과정 중에 슬럼프가 왔을 때, 고민상담을 청했었다. 친구가 말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 학위 따러 대학원 가는 거지 무슨 공부 하러 가냐고 했다. 최근 논문 걱정할 때도 말했다. 학위만 생각하라고, 그러면서 나 같은 사람 많지 않다며, 유별나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어느 날 직장동료랑 저녁에 술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장 동료가 말했다.
“나도 공부해서 기술사나 딸 가봐요. 공부 빡세게 해서 한 3개쯤 딸까?”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 속이 상했었나 보다. 그래도 기술사 공부가 그렇게 만만한 쉬운 공부가 아닌데 너무 쉽게 말하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대뜸 그 동료가 한 마디 더 보탰다.
“다들 기술사를 간판으로 따려고 하는 사람 많은데, 차장님은 공부에 진심인 것 같아요."
그 말이 참 좋았다.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날 비웃지 않아 줘서 진심으로 고마웠다.
일을 하면서도 진심인 편이다. 일을 봤을 때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논하는 스타일. 근데 결코 사람들이 내 맘 갖지 않다. 아무리 맞다 해도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입장이 바뀐다. 원래 그런 건데, 알면서 가끔 혼자 상처 받기도 한다. 내 맘 몰라준다고. 직장에서 승진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열심히 하다 보면 알아주는 이가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어떤 이는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일 밖의 활동과 행위가 더 중요한 거라고 말했다. 항상 조직 안에는 경쟁이 있고, 비교할 것이 있고, 자신을 불필요하게 소모하게 만드는 순간과 시간이 있다. 일만 하면 뭐가 어렵겠는가? 조직이 그런 거다.
하지만 모자란 탓에 그런 걸 잘하지도 못하겠고, 정말 가슴이 원치 않을 일을 할 수 있는 자신도 없다. 돌봐야 할 두 아이도 있고, 가정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 위안했다. 진정성을 알아주는 시간이 올 거라고. 그렇게 자기 합리화하며 살고 있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싶다. 승진도 못하고 성공도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지금 이 순간들이 모두 삶이다. 사회적 성공이 내가 아니고, 진정성 있는 순간들로 채워진 내 삶이, 행복한 순간들이 나에겐 성공이다. 어느 순간, 꼰대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나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쿨하고 멋지게 브리짓처럼 떠나야겠다. 저 멋진 한마디를 던지면서.
Integrity will be fashionable a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