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견: 코끼리 다리 만지기

feat, 김밥집 사장님

by 이프로

오전에 여러 일들이 있었다. 업무를 하면서 늘 좋기만 하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누군가는 자신의 업무를 타인에게 미루고, 사소한 일들로 감정을 소모하기도 한다. 타 부서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일이 안 된다. 수 만 가지 말들, 비난, 불평들이 공중에 떠다닌다. 내 일만 할 수 있다면 무슨 힘든 일이 있으랴, 늘 사람이 힘들다. 더욱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각자의 순서와 역할이 정해진 우리 조직에서는 앞뒤 순서도 잘 지켜야 하지만 앞뒤 업무도 잘 처리되어야 나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복잡해진 감정을 누르고, 점심때 김밥을 먹으러 갔다. 김밥 전문점.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면, 자신의 순번과 주문 내용이 출력된다. 아무 자리에나 앉아 순서를 기다린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우연히 김밥을 말고 계신 사장님을 지켜보게 되었다. 김밥을 무념무상으로 말고 계신다. 주문 순서대로 김밥을 말고 기계에 올리니 김밥이 자동으로 먹기 좋게 썰린다. 그 기계와 혼연일체가 되어, 썰린 김밥을 받아 포장지에 돌돌돌 말아 외치신다. ‘25번이요~’ 동일한 과정이 두 명의 사장님 손에서 기계적으로 일어난다.


‘26번이요~ 필요한 것은 앞에서 챙겨가세요.’ 보니 김밥을 받아 가는 사장님 작업대 앞에 비닐봉지, 단무지, 나무젓가락 등이 놓여있다. 모든 과정이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는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과정이다.


번호가 불리기를 기다리며, 문득 그 사장님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과의 갈등 없이 무념무상으로 김밥만 말고 계신 그 단조로운 일상이, 여러 복잡한 상황, 관련 법령, 유관기관 협의,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 ‘나도 저렇게 김밥만 말고 싶다’ 세상은 왜 복잡한 걸까? 단순하면 안 되나? 풋.


김밥 집 사장님도 김밥을 말고 퇴근한 그날 저녁에는 하루 매출과 수익을 따지며, 요즘 판매량이 줄었다며, 재료값이 너무 많이 올라 원가 맞추기 힘들다며 근심하시겠지? 또 퇴근한 후에도 김밥 재료를 구매하고, 손질하시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들겠지? 다음 날 김밥을 말 때면 아픈 손목과 어젯밤 재료 준비하느라 부족한 잠 때문에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겠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어느 진상 손님이 김밥 맛을 탓하며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고, 김밥을 팔 땐 떡볶이도 같이 팔라며 훈계할 수도 있다. 김밥이 안 팔린 날에는 아까운 재료를 버리느라 마음이 더 고단할 수 있고, 월세를 올려달라는 상가주인 때문에 김밥 집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시는 날도 있을 테다. 그. 런. 거. 다.


김밥 집 사장님의 일상이 그날 본 것이 다가 아닐 텐데, 늘 내가 본 일부분이 전부인 듯 보고 믿는다. 일하다 보면 나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좀 더 넓게, 여유 있게, 깊게 보면 좋은데. 늘 그 눈앞만 본다.


김밥 집 사장님의 무념무상 김밥 마시는 장면 덕분에, 오늘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때론 나도 옛날로 돌아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런 일이 너무 하고 싶다. 오늘같이 머릿속이 복잡한 날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