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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Dec 28. 2017

이십일세기 종생기

통장 잔고에는 십 육만원이 남아있었다.

이십일세기 종생기


  통장 잔고에는 십 육만원이 남아있었다. 

  이른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 중고 온열기를 샀다. 열선이 있고 그 위에 창살이 놓인 작은 상자 같은 온열기였다. 나에게 난방은 사치였는지 잠든 사이 걷어찬 담요의 끝이 열선에 닿았고 불로 번졌다. 다행히 큰 불은 나지 않았지만 바닥과 벽이 그을렸고 종아리까지 데인 상처가 남았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온열기를 샀던 것인데 집 수리비와 치료비로 남은 돈을 써야 했다. 생활비가 부족하여 적금을 깼다. 겨울잠 앞둔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몇 만원씩 붓던 적금이었다. 그래봤자 수중에 돌아온 돈은 백 만원이 전부였다. 집이랄 것도 없는 작은 단칸방 안에 탄내가 진동했다. 탄내를 빼내려고 매일 환기를 시켰지만 매서운 겨울 한파가 방안을 휘 돌아나간 뒤 그 한기를 빼낼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한기와 탄내와 나는 겨울 내내 공생해야 했다. 어차피 나도 모두 소진된 잿가루 같은 인간이므로 탄내와 잘 어울리는 룸메이트였다. 

  겨울 내내 나에게는 탄내가 났다. 한기와 탄내와 나는 나란히 지하 단칸방에서 함께 살았다. 감기가 심해져 폐렴이 왔고 약을 처방 받았지만 약값을 치를 돈이 없었다. 중고 온열기는 고장이 났고 고온에 시달렸다. 온몸이 한기 때문에 으슬으슬 떨렸지만 이상하리만치 내 체온은 높기만 했다. 고장난 온열기 온도보다 내 체온이 높았다. 바깥에 나갈 힘도 없어서 다른 일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 글이 써질리 만무했다. 봉지라면을 생으로 부셔먹고 그걸 약처럼 물과 함께 삼키면서 겨우 겨울을 났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갔다. 

  날이 풀린 2월 어느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집밖을 나설 수 있었다. 잿빛 구름이 잔뜩 낀 날이었다. 골목 가장자리에는 쌓였던 눈이 녹아서 얼음이 섞인 구정물이 흘렀다. J 와 N 은 이제 나와 함께 하기 어렵다고 통보해왔다. 그들에게 내 주머니 사정이나 몸 상태를 알렸던 것도 아닌데 그들은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그들은 나를 도와주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우리가 공동작업을 한다고 여긴 건 나만의 생각이이었나 보다. 

  우리는 함께 소설과 시를 써서 잡지를 만들어 팔아왔다. 처음에는 제법 팔렸지만 판매 수익은 다음 호를 만들고 찍는 데 거의 다 쓰이는 식이었다. 판매량이 저조해지자 J와 N은 각자 다른 일을 구하기 시작했고 나와의 연락도 뜸해져갔다. 그들이 억지로 마감기한에 맞춰 보내온 소설과 시는 형편 없었다.


  우리는 돈을 3등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가 일 년간 함께 해서 번 돈은 고작 백 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J가 보내준 삼십 만원을 모두 인출했다. 지폐 뭉치랄 것도 없이 달랑 지폐 몇 장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아주 잠깐 동안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매달 조금씩 밀렸던 월세를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테고 연말이면 거리로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 그 다음의 생활을 궁리해야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파는 일밖에 나는 할 줄 몰랐다. 아니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주머니에 지폐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와야만 정신을 차릴 것인가.

  J는 돈을 부쳤다는 말과 함께 망설이다 한마디를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지하 월세방에서 글만 쓰는 파리한 소설가는 김승옥 시절에나 하는 거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소설가가 인기도 얻고 돈도 버는 거라고."

  다시 원점이었다. 돈을 인출한 은행 앞 횡단보도에 우뚝 서서 도로 위를 바라봤다. 횡단보도 흰 페인트 위에 한 문장씩이라도 쓴다면 누군가 그걸 읽어주지 않을까.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폰을 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며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의 흰 무늬를 밟으면서. 그러나 아무도, 아무도 흰 무늬를 바라보며 걷지는 않았다.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길을 건너지 않고 다시 뒤를 돌아서 걸었다. 


 


 

소설쓰기란 정말 어렵다. 알다시피 누가 써놓은 소설에 대해 떠드는 것이 훨씬 쉽다. 그동안 창작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뻗대며 평가하기만 했지 직접 제대로 창작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는데 정말로 부족한 것 투성이이다. 갈등 구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고 독자와 밀고 당기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어렵다. 그래서 자꾸만 갈등을 없애고 일인칭 시점으로 써버리는 것 같다.


  "우리는 돈을 3등분 하기로 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에 실린 <1/3 1/3 1/3>라는 작품 첫 문장이다. 소설쓰기 수업에서 이 문장을 제재로 해서 10분 동안 플래시 픽션을 썼다. 이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작품과 엮여서 떠오르는 건 없었고 자연스레 내가 습작으로 쓰려고 했던 주제와 연결이 됐다. 

  선생님의 답변은 책을 팔아 백만원을 벌었다면 꽤 많이 벌었다는 것과 몇 명이 3등분을 하냐에 따라 갈등 구조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소설을 쓰려면 정확한 정보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갈등을 효과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나는 첫 문장 뒤 바로 "우리는 헤어졌다"며 3등분으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지워버렸다.


  이 문장을 기점으로 앞에 쓴 것은 이상의 <종생기>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사랑 이야기는 뺴고 제목과 아래 문장에서 영감을 얻어 이어쓴 정도랄까. 그리고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에서 포그가 돈을 구하지 못해(않아) 노숙을 하기까지의 내용을 따왔다. 따라 써보는 것도 습작의 일부니깐. 내용은 따오되 내 방식대로 풀어 써보았다. 종생기와 달의 궁전이라니, 나는 왜 글을 쓰다 굶어 죽을 지경까지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꾸 끌리는 것일까?


  나는 지금 가을 바람이 자못 소슬한 내 구중중한 방에 홀로 누워 종생하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의 충고에 의하면 나는 추호의 틀림도 없는 만25세와 11개월의「홍안미소년」이라는 것이다. 그렇건만 나는 확실히 노옹(老翁)이다. _이상, <종생기> 중에서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였지만, 어쩐지 이제부터는 미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싶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이루어 낸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에는 차츰차츰 무일푼으로 전락해 아파트마저 잃고 길바닥으로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만일 키티 우라는 여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내가 그녀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만, 나는 마침내 그 기회를 내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의 한 형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나 자신을 구하는 방법으로 보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_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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