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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Dec 30. 2017

중고 카메라

생일 선물로 오래된 수동 필름 카메라를 받았다.

  생일 선물로 오래된 수동 필름 카메라를 받았다. 필름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를 하나 장만하려던 차였다. 선물 받은 카메라는 10년 전 단종 된 카메라였고 이상하게도 필름이 하나 끼워져 있었다. 선물해 준 친구는 카메라를 살 때부터 필름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이전 주인이 필름을 끼워 놓은 채 판 것 같았다. 필름은 딱 한 장만 찍은 채였다. 첫 장은 현상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 시험 삼아 한 장만 찍고 판매한 모양이었다. 오래된 필름을 현상하면 사진을 건지지 못할 때가 많지만 연습할 겸 그 필름을 빼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몇 달 뒤 필름을 모아 사진관에 현상을 맡겼다. 다행히 오래된 필름도 사진이 뿌연 것 말고는 이상이 없었다. 

  현상 된 사진을 보고 있는데 내가 찍지 않은 사진이 한 장 눈에 띄었다. 오래된 필름에 찍혀있던 사진이었다.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사진에는 촌스러운 벽지를 배경으로 한 상차림이 찍혀 있었다. 가로 놓인 상 위에는 초가 꽂힌 생크림 케이크와 케이크처럼 쌓은 김밥, 통닭, 과자 같은 음식이 놓여있었다. 누군가의 생일상 같았다. 사진 오른쪽에는 초점이 맞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몸통이 생일상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누군가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렌즈 바로 앞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노란 스웨터를 입은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에 담긴 순간은 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 같았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오래된 사진을 간직하기 보다는 주인을 찾아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물어 카메라를 샀다는 남대문 시장에 가보았다. 상점 주인은 중고 거래를 일일이 정리해놓지 않기 때문에 원래 주인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필름 카메라 동호회 커뮤니티에 사진의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오래된 카메라이기도 해서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남의 사진을 소장한다는 약간의 꺼림칙한 마음의 짐을 그렇게라도 덜고 싶었다.

  그 사진을 잊어갈 때 쯤 내가 올렸던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누군가 ‘메일 보냈습니다’ 라는 댓글을 달아 놓은 것이었다. 밀려드는 호기심에 얼른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사진관을 운영한 적이 있다는 중년 남자였다. 그는 손님의 카메라를 잠깐 맡았던 적이 있는데 급하게 사진관을 정리하면서 어쩔 수 없이 팔아버린 카메라 같다고 했다. 아주 못된 짓이었지만 당시 그의 아내가 부녀회 곗돈을 가지고 집을 나가버리는 바람에 비난을 피할 길이 없어 그 동네를 도망치다시피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종암동에서 사진관을 오래 운영했었다고 했다. 

  “종암동이라고?”

  나는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독립하기 전까지 종암동에서 이십 년을 살았고 부모님은 아직 그 동네에 살고 계셨다. 그의 메일을 읽고 문득 생각난 것은 언젠가 스치듯 꺼냈던 엄마의 말이었다.

  “예전에 너희 고모부가 카메라 회사에 다녔잖아. 그때 우리한테 수동 카메라를 좋은 걸로 하나 줬었는데 필름만 껴줬지 그 다음은 뭐가 뭔지 몰랐지. 그래서 동네 사진관에 맡겨 두고 좀 배워서 찍으려고 했는데 글쎄 사진관 주인이 말도 없이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어. 너 어릴 땐데 한참을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어줬지 뭐냐.”

  내가 카메라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던 때 엄마와 마늘을 까면서 나눴던 이야기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자로 사진을 보낼 테니 확인 해달라고 말씀드리곤 우선 전화를 끊었다. 어린 아이의 생일상. 뿌옇게 현상된 걸로 봐서 적어도 십 년은 더 된 필름이었다. 사진 속 생일을 맞은 아이는 과연 누구일까. 카메라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고 마치 생일 선물처럼 내게 돌아온 것일까. 

  엄마가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이제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확인한 뒤 내게 답장을 해줄 것이다.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엄마는 스마트폰 자판을 하나씩 터치하면서 천천히 무언가를 쓰고 계실 것이다.




소설쓰기 수업 과제로 '생일'이라는 주제로 플래시 픽션을 썼다.

생일이라는 주제를 꼽은 것은 수업 주제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기 때문이다. 

중고 카메라라는 제목이 좀 아쉽다. 피드백을 받는대로 수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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