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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an 09. 2018

봄이었다

봄이는 우리의 아이 같은 존재였다


  봄이가 죽었다. 겨울임에도 봄처럼 따뜻한 볕이 집안에 드리운 날이었다. 품에 안긴 봄이는 초점 없는 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봄이의 얼굴에서 멍한 표정마저 사라지던 순간, 작은 개의 영혼이 늘어진 몸을 빠져나가는 순간에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조용한 죽음 앞에서 행여나 내 숨소리가 방해될까봐 억지로 숨을 참았다.

  봄이는 열네 살이었다. 오래 앓았던 백내장과 결석 때문에 눈은 멀었고 근육도 모두 빠져서 앙상하게 야윈 상태였다. 봄이가 좋아하던 방석 위에 작은 시신을 눕혔다. 방석 위 봄이의 웅크린 모습. 죽음이 낯선 만큼 익숙한 모습이었다. 며칠 사이 급격히 기운을 잃었던 봄이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봄이와 함께 한 지 십여 년. 그 기억을 가장 오랜 시간 나누었던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봄이의 시신과 나, 덩그러니 우리만 놓인 고요한 순간에 엄마도 남편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먼저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 좋은 소식을 들려줘서 미안해. 우리 봄이가 죽었어.”


  그와 나는 스물네 살에 만나 칠년 동안 연애를 했다. 그는 갓 복학한 학생이었고 나는 졸업전시를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부모님 몰래 자취방을 합친 우리는 유기견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나갔다가 연을 맺은 봄이와 식구가 됐다. 봄이는 두 살이었는데 날 때부터 우리와 같이 살았던 것처럼 금세 정을 붙였다. 봄이 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오래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그가 졸업을 앞두고 내가 직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불안함에 자주 싸웠다. 눈치 빠른 봄이는 우리 사이에 냉전 기류가 흐를 때면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화해를 권하듯 뛰어다니기 바빴다. 봄이는 세 번째 룸메이트이자, 우리의 아이 같은 존재였다.

  차가운 익숙함만 남긴 채 헤어지던 날, 봄이만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살던 집에는 봄이와 내가 남았고 그가 떠났다. 봄이는 어느새 늙은 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봄이의 마지막은 꼭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바꾼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는 답장을 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어렵게 말을 이은 그는 봄이의 죽은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봄이의 죽음은 우리 두 사람이 애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집주소를 알려주었고 오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다른 사람과 결혼한 전 여자친구의 집에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뉘어 있는 봄이의 시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그 앞에 쓰러지듯 앉아서 낮게 울었다.

  “남편이 곧 올 거야.”

  웅크린 그의 등에다 말했다. 스스로도 무서울 만큼 나는 덤덤했다. 아직 감정도 추스르지 못한 그를 내쫓듯이 일으켜 세웠고 그는 봄이를 안고 힘겹게 나섰다. 나만 괜찮다면 반려견 장례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했다. 화장을 할 것이고 뼛가루를 작은 구슬로 만들어 보관하고 싶다고 했다. 봄이의 마지막은 그에게 맡기고 싶어서 그러라고 말해주었다. 이번에는 집에 나만 남고 그와 봄이가 떠났다.

  

  귀가한 남편이 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묻기에 낮에 죽어서 화장터에 보냈다고 무심히 말했다. 남편은 이미 노쇠한 봄이의 상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말없이 다가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는 울지 않았다. 그의 어두운 표정은 봄이가 아닌 나를 향한 것이었다. 옛 연인의 표정과는 다른 색의 온도였다. 봄이의 죽음에 같은 색으로 울어줄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왜 이제야 실감이 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알 길이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오랜 연애와 헤어짐 뒤에도 우리가 함께 했었고 여전히 함께 한다는 무언의 증표 같았던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봄이도 그도 나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봄이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던 장면들. 그와 내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했음에도 한 생명을 가족으로 맞이했던 날, 봄이의 생명력을 보며 뜻 모를 책임감이 솟구치던 날들. 그 모든 것을 엮어주고 공유해줄 생명을, 사랑을 나는 모두 잃었다.     


얼마 후 계절이 바뀌었다. 얇은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는데 현관 앞에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하얀 천에 쌓인 작은 구슬이 놓여있었다. 봄이었다.




체호프 소설을 다룬 주차에는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플래시픽션을 썼다. 나름대로 김애란의 단편 <입동>을 느낌을 살려 써보고자 한 것인데 진짜 오렌지가 되지 못한 '오렌지맛'이 됐다. 구상이 가장 재밌고 글 쓰는 것은 그다음 재미인데 퇴고는 정말 성실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일단 초고를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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