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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an 16. 2018

새똥

연달아 새똥을 맞은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침부터 새똥을 맞았다.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인데 하필 새똥은 나를 겨냥해 떨어졌다. 희멀건 액체와 진녹색 덩어리가 셔츠 어깨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급한 대로 손가락을 튕겨 덩어리를 털어내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셔츠를 닦아냈다. 하얀 셔츠에 얼룩이 남아있었다. 회사 동기에게 새똥 맞은 얘기를 했더니 그는 복권을 사라고 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새똥을 맞는 것은 굉장한 확률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좀 위로가 됐다.


   다음날 아침 또 새똥을 맞았다. 이번에는 오른쪽 손등이었다. 난데없이 새똥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나는 하필 그 타이밍에 손을 휘저으며 걷고 있었다. 소매 자락에 검녹색 덩어리가 묻어 있었고 액체는 스며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연달아 새똥 세례를 받다니 정말로 복권을 사야 하나 싶었다.


  며칠 후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서 졸고 있는데 잠결에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옆에 앉은 여자가 시끄럽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우리나라 사람 같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조잘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여자에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주 시끄러운 소음이었지만 처음 듣는 외국어일 거라 여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아침 열차 안은 무겁고 조용했다. 잠시 후 정적을 깨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제 이상한 여자가 통화하던 소음과 비슷한 소리였다. 이번엔 좀 더 굵은 목소리였다. 외국인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비좁은 열차 안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사무실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같은 소음이 여러 곳에서 들려왔다. 이제는 내 청력이 의심스러웠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앞에서 마주친 동료들과 대충 목례를 하고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직 사무실은 조용했다. 영업부 회의록을 정리하는 척하며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출근한 옆자리 동료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소리였다. 뀍뀍.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듣는 소리였다. 그것은 분명 새소리였다. 엉겁결에 나도 인사를 건넸는데 동료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새똥 맞은 얘기를 했던 동기가 똑같이 새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너까지 왜 그러느냐고 말했더니 나를 보는 동기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놀라움과 혐오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나를 자리에서 끌어내더니 회의실로 데려갔다. 그는 나를 달래는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만 새소리를 듣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동료들의 표정을 보건대 그들은 내 말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많은 새소리에 둘러싸여 근무시간을 채운 뒤 퇴근했다. 들리는 건 못 들은 척 할 수 있었지만 말을 할 때마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끔찍했다. 퇴근길에도 새소리는 계속됐다. 이야기하는 사람들, 지하철 안내방송, 집에 도착해서 켠 텔레비전에도 새소리로 가득했다. 수많은 새소리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나에게만 멀쩡히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연달아 새똥을 맞은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새똥이 맞긴 하던가요?”

  이제 새똥 사건은 어색함을 깨는 데 쓰는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거래처 미팅 겸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거래처 직원 하나가 물어왔다. 두 번 정도 미팅을 해서 이제야 안면을 튼 직원이었다.

  “빗방울이었을 수도 있고 어디 건물 위에서 뭘 뿌린 걸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럼 제가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말입니까?”

  주변에서 시끌벅적하던 말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당황했는지 거래처 직원은 넘어가자는 식으로 손짓을 보내더니 잠시 후 자리를 비웠다. 지금까지 새똥 이야기에 이런 식으로 반문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겨우 두어 번 만난 직원이 보이기에는 너무도 무례한 반응 같았다.

  

  며칠 뒤 새똥 이야기에 따지고 들었던 직원에게서 문자가 왔다.

  “윤 과장님, 지난번에 하셨던 새똥 얘기 있잖습니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단편소설 습작. 

주제는 일상 속 환상. 강의로 다룬 소설이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한 장 안에 생각한 모든 것을 담아 내기가 어렵다. 자꾸만 길어지고 설명하려고 한다. 카프카의 <변신>도 제목이 '벌레'가 아니듯 무언가 다른 제목으로 뽑아보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피드백을 받은 후 다시 손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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