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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Feb 25. 2018

삶은 양배추 같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관계'라는 쌈장은 삶은 양배추의 맛을 한층 살려준다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로 관람 후 작성한 글이며 결말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리메이크된다고?

원작을 사랑한 팬은 사실 걱정부터 앞섰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을 좋아한다.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은 언제나 엄마와 자연이었다. 서럽고 지친 날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저녁밥을 먹으면 나쁜 생각이 사라졌고 여기저기 시달린 한 주를 보내고 엄마와 주말마다 수목원을 찾아 새소리를 들으면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 위로를 모두 담고 있는 영화였다. 국내에서 이 영화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의심부터 들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제된 담백함을 자극적인 양상이 짙은 한국 영화에 과연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영화 '시장'이겠지만. 그 의심은 ‘유타’ 역에 배우 류준열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 심해졌다. 줄곧 주연급을 맡아온 배우가 캐스팅된다면 당연히 영화에서 비중이 크다는 뜻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러브라인’이 생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담백함을 해치는 요소로 과도한 러브라인 전개를 가장 우려한 것이었는데 캐스팅을 보고 역시,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하여 마음이 놓이던 차였지만 '사랑 타령'이 영화의 맛을 해칠까 봐 걱정이 됐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실 만화가 원작이지만 영화로서는 일본에서 만든 영화가 원작인 셈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의 눈총을 받게 마련이다.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거나 그에 못 따라가도 안 되고 과해도 안 된다. (요즘은 그런 원작 팬들을 두고 ‘시어머니 같다’고들 하더라.) 소설이나 만화 원작을 러닝타임 두 시간의 영상으로 옮긴다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원작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국내 리메이크된 <리틀 포레스트> 계절별 포스터




'관계'라는 쌈장은 

삶은 양배추의 맛을 한층 살려준다.



  원작 팬 입장에서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한 마디로 잘 만든 영화였다. 로케이션에 굉장히 신경 썼다고 하던데 위치와 고택 선정부터 각색까지 만족스러웠다. 우려했던 부분도 적당히 선을 지켜서 부담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영화를 더 잘 풀어낸 느낌을 받았다. 가장 걱정했던 것은 러브라인이었고 그다음은 억지로 주입하는 감동 코드나 유머 코드였다. 개인적 의견이나 주류 한국 영화 특징은 대체로 이런 인공적 조미료가 많다. <리틀 포레스트>에 러브라인이 없지는 않다. 류준열이 연기한 ‘재하’ 역의 비중이 꽤 크다. 그리고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그의 감정선이 드러난다. 그러나 누가 누구와 연결되는지 뻔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억지스러운 감동 코드는 다행히 없었고 오히려 유머 코드는 적절히 배치되어 영화 보는 맛을 더해주었다. 강아지 ‘오구’와 동네 주민들의 오지랖이 큰 몫을 했다. 주된 플롯 외 주변인 혹은 단편적 관계를 배치하여 재밌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혜원과 재하, 가을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관계’에 있다. 앞서 러브라인을 걱정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주인공에게 관계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같다. 특히나 관계에 집착하는 한국 정서 특성상 이 부분을 뺄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이를 교묘하고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일본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도시에서도 섬처럼 지냈었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며 혼자서 지내는 것에 익숙하다. 배우 김태리가 연기한 주인공 ‘혜원’의 성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속내를 잘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이치코와 달리 혜원은 좀 더 관계에 노출되어 있다. 도시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했었고 함께 시험을 준비하던 남자친구도 있으며 돌아온 고향에는 큰고모가 있다. 시험에 붙었다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오가며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도 혜원의 신상을 물으며 그의 사적인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드나든다. 고향 친구인 ‘은숙’과 ‘재하’의 관계도 이치코가 ‘키코’나 ‘유타’와 맺는 관계보다 더 깊고 설명적이다. 게다가 재하는 혜원에게 강아지 ‘오구’를 맡긴다. 또 하나의 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혜원은 이치코처럼 섬 같은 인물이 아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관계에 엮여 있다. 이치코가 섬이라면 혜원은 반도 같은 인물이다. 게다가 이치코의 집은 마을과 꽤 동떨어진 곳에 있지만 혜원의 집은 지나가던 주민들이 한 마디씩 참견할 수 있는 길가에 위치해 있다.


혜원과 재하, 여름
혜원과 재화와 은숙, 겨울


  혜원과 엮인 인물들 덕분에 영화는 좀 더 힘을 갖는다. 일본은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어 만들었는데(만화 원작을 그대로 옮겨서 두 편이 되었을 것이지만 한 편으로 편집한 <리틀 포레스트: 사계>도 있다) 임순례 감독은 한 편으로 만들었다. 많은 것을 압축하거나 넘겼을 것이고 그로 인해 생기는 느슨한 부분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사나 행동으로 그 간극을 설명하거나 메꿔주었다. 혜원의 ‘관계’는 한국적 정서를 보여주는 역할도 했지만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관계들이 절대 과하지 않고 적절해 보였다. 동네 주민이나 고향 친구들과의 관계를 일본 영화처럼 옮겼다면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져 보였을지도 모른다. 벼농사를 직접 하던 이치코와 달리 혜원은 농사법에 능하지 않다. 큰고모의 농사일을 도와주거나 텃밭을 가꾸는 정도의 일을 한다. 혜원이 고시촌에서 공부하며 지내던 장면과 은숙과 재하의 직장 에피소드가 여러 번 등장한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오히려 관계를 추가함으로써 혜원이라는 캐릭터에 현실성, 관객이 공감할 있는 부분적절히 더하고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도 오히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더 잘 다룬 느낌이다. 일본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다. 원작을 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혜원과 엄마가 너무 많은 것을 말로 설명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원작을 알면 기대치와 기준점만 높아진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면서 그들이 왜 그러한 삶을 선택했는지를 적절하고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달까. 오히려 일본 영화처럼 다뤘다면 여백이 많아서 그 삶의 타당성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엄마와 혜원의 토마토 신




계절별 향기가 나고

어느새 배고파지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만큼 중요한 존재인 음식과 자연.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어 긴 호흡으로 진행된 일본 영화와 비교했을 때 계절 변화와 풍경을 담은 장면과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대폭 줄기는 했다. 영화를 한 편으로 옮기고 등장인물 비중도 늘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테지만 일본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계절별로 자급자족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잘 소개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원작에서 다룬 음식과 유사한 한국 음식이 적절히 등장해서 감탄했다. 이치코는 ‘누텔라’의 존재를 깨닫고 엄마의 비밀 레시피에 배신감을 느꼈는데 혜원의 경우는 ‘오코노미야키’였다. 어른이 되면 알려주겠다던 엄마의 감자 요리 레시피도 그대로 살렸다. 세세한 부분을 잘 살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는 일본 영화의 그것과 살짝 다르지만 (일본 영화는 여름부터 시작하고 한국 영화는 겨울부터 시작한다) 이질감이 없었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영상임에도 후각과 미각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그 계절 특유의 향이 나고 밥을 먹고 왔어도 주인공이 야무지게 만드는 음식 때문에 배가 고파진다.

<리틀 포레스트> 포스터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버전




조금 열려 있는 미닫이 문이

담백함을 더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을 한 편의 영화로 잘 옮긴 작품이다. 아마 일본 영화는 만화 원작을 긴 호흡 그대로 옮겼을 텐데 임순례 감독은 인물 관계와 대사나 내레이션을 추가하여 여백을 줄이고 주인공의 선택과 그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들(음식, 자연, 계절)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달라진 결말도 마음에 든다. 오히려 더 좋다. 혜원과 이치코 모두 고향을 다시 떠나 도시로 향하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의 정착, 즉 ‘아주 심기’를 하러 돌아오지만 혜원은 얼마 후 혼자서 돌아오고 이치코는 몇 년 뒤 가정을 이루어 돌아온다. 혜원과 이치코 모두 도피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고향에서 보냈던 시간 덕분일 것이다. 도시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발견하고 선택할 용기를 얻는 것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간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일본 영화에 나온 이치코 엄마의 대사처럼,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점점 퍼져나가는 나선형처럼" 말이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 혜원은 거실 미닫이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활짝 웃는다(아마도 엄마일 것이다). 이치코는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침체했던 고향의 축제를 다시 시작한다. 영화는 축제에서 전통춤을 추는 이치코를 담으며 끝난다. 이치코가 도시를 떠나 어떤 삶을 보내다 고향에 돌아왔을지에 대한 것이 여백으로 남아있다. 가정을 꾸리고 돌아왔기에 오히려 도피가 아니라 확신이라는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관계가 없다시피 했던 인물에게 갑자기 굉장히 확실한 관계가 부여된 느낌도 났다. 그래서 결말은 오히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더 좋았다. 영화는 끝까지 혜원에게 관계의 연장을 암시하고 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정리한 재하도 그렇고 누군가의 방문을 암시하며 끝나는 열린 결말도 그렇다. 결말까지 영화의 주된 톤을 끝까지 유지해서 더 담백했다. 결말 덕분에 일본 영화보다 조금은 양념 맛이 났던 느낌이 사라진 것 같았달까. 일본의 <리틀 포레스트>가 생양배추를 아삭아삭 먹는 맛 같았다면 한국의 <리틀 포레스트>는 삶은 양배추에 쌈장을 살짝 찍어 먹는 맛이었다. 그러나 쌈장 맛은 처음에만 살짝 났을 뿐이었고 씹으면 씹을수록 삶은 양배추 맛이 입안에 달게 퍼지는 것 같았다. 오히려 살짝 찍은 쌈장은 삶은 양배추의 맛을 더 살려준다.


  이 영화, 흥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흥행해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도피하고 있는 모든 청년이 자기 확신에 찬 선택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기준으로 본 도피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선택을 내리길. 비교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말이다.





단상들


- 이치코가 오리고기를 먹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어서 그 장면을 어떻게 다룰지 기대했었다. 그런데 혜원은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는다. 혜원은 왜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일까.


- 감탄했던 로케이션. 고택부터 주방 내부까지 느낌을 정말 잘 살려내서 감탄했다.


- 서울 토박이로 평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서울을 고향이라고 말하기 좀 멋쩍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도 돌아갈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글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제작사에 있으며 출처는 Daum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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