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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Mar 12. 2018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길 건너의 완벽한 환상

​깨지기 쉬우니 조심히 다뤄주세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길 건너의 완벽한 환상

깨지기 쉬우니 조심히 다뤄주세요.





완벽한 환상, You are so beautiful? FRAGILE!

플로리다 하면 떠오르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있다. 디즈니월드가 있는 휴양지이자 관광지의 이미지.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지역이 갖는 이미지나 포스터에서 풍기는 파스텔 톤의 이미지를 기대했다면 놀랄 수 있는 영화이다. 사람들은 환상의 나라를 보고 싶어 할 뿐 [환상]이라는 간판 뒤편에 놓인 삶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할리우드 신예 감독 션 베이커의 장편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환상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플로리다 주 디즈니월드 길 건너편 '매직캐슬' 모텔에 사는 여섯 살 꼬마 무니의 시선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누군가에겐 잠시 들렀다 가는 싸구려 모텔이지만 무니에게 매직캐슬은 집이자 놀이터이다. 무니의 엄마 핼리는 제대로 된 직업도 집도 없이 매직캐슬에 장기 투숙 중이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에게는 무니뿐이다. 무니를 위해 일을 구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아무도 그녀를 고용하지 않는다. 핼리의 양육방식이 도덕적으로 질타받는다고 해도 무니에게 핼리는 한없이 좋은 엄마.  무니는 매직캐슬의 악동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아이이다. 모텔에 장기 투숙 중인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 스쿠티와 젠시와 함께 매직캐슬을 디즈니월드 삼아 지낸다. 모텔 계단 아래나 한때 매춘부가 살았던 빈집, 디즈니월드의 불꽃축제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디즈니월드 뒤편 공터를 환상적인 장소이자 생일 선물로 삼으면서. 


디즈니월드에 온 사람들 중 디즈니월드 길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할 이가 있을까? 디즈니월드의 아름다운 캐슬 뒤편에 버려진 빈집을, 죽었지만 계속해서 줄기가 자라나는 나무를 궁금해하는 이가 있을까? '무니의 환상의 공간'들은 디즈니월드에 비해 버려지고 방치된 빈집, 초라한 죽은 나무와 같을 뿐이다. 

  


매직 캐슬, 어쩌면 만들어진 환상

연보라색 건물 외벽과 짙은 보라색 객실 문이 독특한 ‘매직 캐슬’은 싸구려 모텔임에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하려 애쓴 듯한 모습이다. 보라색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나 객체를 표현할 때 빼놓지 않고 쓰이는 색깔이다. 그러나 보라색 객실 문을 열면 환상적인 외관과 전혀 다른 삶이 놓여 있다. 당장의 방세를 걱정하며 매일의 밥벌이에 쫓기는, 플로리다의 극심한 더위에 에어컨을 켤 수 없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현실 같은 것. 

어른’들은 그들의 기준에 맞는 환상을 만들어 놓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버리거나 방치한다. 환상의 뒤편에 버려진 것들은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2만 달러를 들여 건물 외벽을 보기 좋게 칠해 놓았으나 문을 열어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신혼여행을 이런 곳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하고 복도에 거치된 자전거는 보이지 않게 해야 하며 사회복지사들이 빵을 나눠주는 전용 자동차는 건물 뒤쪽으로 감추려고 한다. 

 



바비와 보라색 페인트

매직캐슬 모텔 관리자 ‘바비’는 열심히 연보라색 페인트로 건물 외벽을 칠하고 자전거를 치운다. 무니와 친구들이 전기 차단기를 내려놓은 장난을 해결하고, 수상쩍은 변태를 쫓아내고 느닷없이 등장한 야생 새 세 마리를 몰아낸다. 바비는 매직캐슬의 완벽한 환상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관리’에는 자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도 환상에 속박될 뿐이어서 복도에 거치된 자전거가 꼴 보기 싫으니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라는 모텔 사장의 말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핼리와 무니 모녀를 지켜주고 싶지만 선뜻 나서 지켜줄 수 없다. 자신의 가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버지인데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 바비는 가장 모순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시선을 가진 인물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환상성’의 이면을 알고 있지만 굳이 나서서 그 이면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인물. 그는 경계에 서서 보라색 페인트를 덧칠할 뿐이다.  


무니의 무지개

무니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온 뒤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월드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무니의 무지개. 매직 캐슬 위로 멋지게 생겨난 무지개를 바라보는 무니와 젠시의 뒷모습은 디즈니월드의 캐슬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과 다르지 않다. 매직캐슬은 무니에게는 더할 것 없는 환상의 나라이다. 어른들에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싸구려 환상이겠지만 무니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무니의 매직캐슬은 결국 어른들의 환상에 맞추기 위해 파괴된다. 어긋난 것은 연보라색 페인트로 칠해서 결을 맞추는 것이 어른들이 자신들의 환상을 지키는 방법이다. 다른 기준의 환상은 용납하지 않는 냉정한 환상의 세계. 이 파괴의 손아귀 앞에서 무니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무니와 젠시가 디즈니월드의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결말은 아이들의 기준에서 자신들의 매직캐슬을 나름대로 지키는 방식이다. 환상을 지키기 위해 환상 속으로 퐁당 뛰어드는 결말은 무니와 젠시의 매직캐슬을 지키기 위한 플로리다 프로젝트다.  


길 건너에 놓인 완벽한 환상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환상의 이면을 보여주지만 동정하거나 판단하지는 않는다. 무대 뒤의 삶을 보여주지만 감싸지 않는다. 환상의 성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유지하고 즐기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없다. 단지 완벽한 환상성은 없다는 것, 환상이란 허울에 가려진 이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디즈니랜드를 기대한 사람들은 결코 쳐다보지 않는 캐슬의 뒷면을 보여줄 뿐이다. 바로 길 건너에 있지만 부러 외면하는 것. ‘바비’처럼 다가가 손잡아 주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음을 알고 다가가지 말아야 함을 아는 무력한 시선, 딱 거기까지만 보여준다. “완벽한 환상”이란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 또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 무니의 그다음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무니만의 완벽한 환상 속에서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친구들과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생각 또한 지키기 어려운 환상일 뿐이다. 





덧1. 

핼리의 시선으로 그렸다면 영화를 끝까지 못 봤을 것 같다. 극심한 더위에도 에어컨을 켤 수 없는 방에 갇힌 것 같았을 테니까. 우리는 무니가 초대한 환상의 공간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보라빛을 보라빛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핼리의 시선이었다면 흑백영화로 처리해야만 겨우 볼 수 있었을 테지.


덧2.

아이들에게 매직 캐슬이 디즈니월드 못지 않은 놀이동산이자 환상의 공간임을 보여주는 컷들.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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