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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Mar 20. 2018

그해 여름, 복숭아 같은 사랑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



소설

<그해, 여름 손님>

<그해 여름 손님>은 이번 주 개봉하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이다. 본래 소설도 영화와 동명이었으나 국내 2쇄 출간 본부터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을 꽤 잘 뽑았다. 사건/시간(그해 여름)과 시선/시점(집주인이 보는 손님)을 잘 담았다. 그해 여름에 일어난 사건을 주인공 '엘리오'의 시선으로 그리니까. 적당한 청량함과 적당한 설렘과 궁금증을 담아낸 제목과 풋풋한 색감을 살리고 터치를 살린 색연필로 그린 '복숭아' 표지 이미지까지 완벽하다. 소설에서 '엘리오'가 쓰는 일기장에 제목과 표지를 붙였다면 <그해 여름 손님> 판본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원작 제목은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가 사랑을 확인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하지만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라고 번역을 했을 때, 아무리 표지를 청량하고 풋풋하게 잘 뽑는다고 해도 소설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특히 사랑 이야기로 풀기는 더욱. 언어와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이름을 부르'는 행동이 '사랑'으로 연상되기는 다소 어렵고 제목이 길어져 어쩐지 착 감기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원어를 그대로 살리지 않는다면 새로 제목을 붙이는 편을 선택했던 것 같다.





복숭아 같은 사랑


짝사랑을 하면 누구나 기호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계속해서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도 그렇다. 저 말과 저 몸짓이 나를 향한 호감인지 내가 하는 말과 손짓을 보고 그가 내 마음을 눈치챈 것은 아닌지. 넘겨짚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확대 해석해서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심정을 얼마나 복잡 미묘하게 만드는가.


소설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감정을 숨기거나 재보는 과정(누구나 기호학자가 된다), 2부는 확인하고 확신하는 과정, 3부는 서로 다른 티켓을 들고 떠난 이후의 과정이 담겨있다. 첫 만남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재회까지 담겨있는데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그해'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렇다 할 확신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네 이름으로 나를 부를 것'이라는 애잔함을 남겨둔 채.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날개가 꺾이는 사랑은 언제나 애틋하고 애처롭다. 특히나 엘리오와 올리버의 경우처럼 날개가 꺾이는 지점이 두 가지나 존재할 때는 더욱 그렇다. 통념과 시한時限. 게다가 두 사람은 통념과 시한을 자신들이 함께 통과할 수 없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동성 간의 사랑이 통념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을 알고 있고 '그해 여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그때처럼 지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부딪칠 지점을 알고 엘리오와 올리버는 '거기까지는'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그 앞에서 날개를 파닥이는 채로 멈추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복숭아 같다. 소설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복숭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루기 어렵고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운동을 마친 운동선수의 볼 같은" 풋풋한 분홍빛을 띄는 복숭아 열매는 정성 들여 재배해야 하지만 강도와 당도를 유지하는 보관기간도 짧다. 소설에서 엘리오네 별장의 정원사 '안키세스'가 복숭아나무 재배에 열성적인 것처럼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법이다. 봉긋한 열매를 자칫 세게 쥐면 복숭아에는 상처가 나 버린다. 복숭아는 엘리오가 자신을 향한 올리버의 사랑을 확인하는 개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들의 사랑이 그 모양과 맛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복숭아가 말캉한 과육 가운데 단단한 씨앗을 품고 있듯 그들의 사랑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고 감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드레 에치먼, <그해, 여름 손님>, 도서출판 잔, 2018





1부

'나중에!'와

'나중이 아니면 언제?'


엘리오는 매년 이탈리아 해안가 작은 마을에 있는 별장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름을 난다. 엘리오에게는 지루한 연례행사일 뿐이다. 그곳에서의 6주라는 시간을 테니스와 수영, 작곡, 독서를 하면서 꾸역꾸역 보낸다. 엘리오의 아버지는 논문이나 저서 집필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학자들을 선정하고 별장으로 초대한다. 그들은 별장에서 마음껏 숙식하며 자유롭게 지낸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그해 여름, 미국에서 온 '올리버'라는 젊은 학자가 별장을 방문하고 첫 등장부터 엘리오는 그에게 매료되어 버린다. 올리버가 택시를 타고 파란 셔츠를 펄럭이며 등장했을 때, 그가 걸을 때마다 에스파듀 신발에서 움직이는 부드럽고 동그란 발꿈치를 보았을 때, 그의 다정한 듯 무심한 "Later!"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오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다.


엘리오는 올리버에게 잘 보이고 싶으면서도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올리버의 시선을 느껴 돌아보면 언제나 그는 차갑고 냉정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그 눈빛 때문에 올리버를 오해한다. (순간 변하는 눈빛의 찰나와 온도, 그 미묘한 차이도 사랑을 품은 자에게는 아주 중대하고도 거대한 차이다.)


엘리오는 올리버가 습관처럼 내뱉는 "Later!"라는 말에 자신과의 대화나 감정이 차단되거나 뒷전으로 밀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올리버의 "나중에!"는 "깜짝 상자의 인형처럼 느닷없이 튀어나와" 엘리오를 당황하게 한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나중에!"에 상처를 받고 급기야 약간의 반감을 갖게 된다(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리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나중이 아니면 언제?"




2부

통념과 시한을 외면하고


통념을 대하는 시선은 엘리오와 올리버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책은 엘리오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올리버의 시선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엘리오 보다는 올리버가 통념에 좀 더 영향을 받고 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엘리오가 그랬듯 올리버도 엘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끌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향한 엘리오의 감정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자신의 감정을 숨겼고 대담해지려는 엘리오마저 살짝 제지한다. 그 과정에서 올리버 역시 아팠겠지만 엘리오 보다는 의연히 대처한다. 올리버의 과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로마의 한 서점에서 진행된 북 파티에서 올리버의 지인들이 엘리오를 보고 개의치 않아한 장면들에서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북 파티 지인 중 하나는 올리버에게 방탕하다고 하는데 이전에 그가 만났던 다른 남자들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여성편력이 심해 동성으로까지 범위를 넓혔냐는 조롱일 수도 있다) 올리버는 한때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했을 수는 있으나 현재는 의심은 마친 상태일 수도 있고 엘리오를 만나 번뇌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엘리오와 별장에 지내면서 키아라를 만났으나 잘 풀리지 않고 그 뒤 짧은 만남을 이어간 걸 보면 말이다.


그가 습관처럼 하는 말인 "Later!"은 엘리오의 아버지가 집어냈듯 "수줍어서" 하는 말이다. 즉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에 수줍은 사내가 감춰있는 것이다. 사랑을 확인하고 엘리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은 엘리오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엘리오의 판단을 따를 뿐이다. 올리버를 숭배하던 엘리오는 사랑을 나눈 이후 올리버를 아래서 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바라본다. 차갑기 그지없던 눈빛 속에 숨이 있던 수줍은 사내를 본다.


엘리오는 자신이 올리버를 사랑한다는 사실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해로부터 3년 전 로마에서 한 남자와의 에피소드가 있었을 때부터 동성 간의 끌림에 대해서 그리 거부감이 있지 않았다. 엘리오 자신도 '그때부터였다'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정의하려 한다기보다 사람 대 사람 간의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올리버에 대한 자신의 감정 역시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올리버의 감정을 확인한 후 처음 잠자리를 가진 뒤에 엘리오는 욕지기를 경험한다. 동성을 사랑하는 감정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미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해본 엘리오 입장에서 막상 경험하게 되자 동성 간의 잠자리에 대한 약간의 수치심이나 거부감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엘리오는 후회의 감정은 잠시일 뿐임을 받아들인다. 여전히 올리버를 원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겉표지를 벗겼을 때 양장본 표지. 복숭아 씨앗이 그려져 있다.



3부

오늘도,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6주가 거의 다 흘렀을 때 엘리오와 올리버에게 통념은 이제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로마에 가서 서로를 향한 사랑을 드러낸다. 깊은 밤거리에서 서로를 안았을 때도 지나가던 노인들이 혀를 차지만 개의치 않는다. 적어도 아무도 그들을 모르는 곳에서의 통념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리오와 올리버는 두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제한된 시간 앞에서 두 사람은 목적지가 다른 티켓을 들고 있다. 엘리오는 이탈리아에 남고 여름이면 그 별장으로 돌아갔지만 올리버는 자신이 속했던 곳, 미국으로 갔다. 엘리오는 남고 올리버는 떠났다. 헤어질 때 엘리오는 올리버의 셔츠와 수영복을 가져갔고 올리버는 엘리오의 엽서를 가져간다. 엘리오는 '입는 것', 즉 올리버의 육체와 함께 했던 것을 취했지만 올리버는 '전송'의 의미가 담긴 엽서를 택했다. 올리버는 그래서 제한된 것들에 부딪치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통념의 안쪽으로 뛰어든다. 올리버는 결혼 소식을 전하고 엘리오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옷을 간직한 채 있다. 올리버는 "Later!"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나중에!라는 말로 감정을 직면하지 않고 통념과 시한에 부딪치지 않는다. 숨기고 감추고 그럴싸하게 뛰어넘어 아무것도 아닌 척을 한다. 내면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내를 두고서 말이다. 엘리오만이 나중에! 안에 담긴 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엘리오가 자신을 "엘리오"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올리버 안의 수줍은 사내는 고개를 든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어야만 올리버는 올리버 자신일 수 있는 것이다.


6주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엘리오와 올리버는 6주의 시간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사회적 통념이나 물리적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서로를 서로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니까. 세상 누구도 엘리오를 올리버로, 올리버를 엘리오로 불러줄 수 없으니까. 그해로부터 20년 뒤 별장에서 두 사람이 재회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나지만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자신들만의 신호이자 암호인 "Call me by your name, then I'll call you by mine."을 기억하고 있는 한.


캐스팅 완벽 무엇ㅠㅠ!




덧.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복숭아 앓이)


2018 오스카 각색상을 수상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원작 소설과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고 한다. 원작 소설을 읽는 재미는 여기서 온다. 내가 책을 읽고 상상했던 것과 누군가가 한 상상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 특히나 그것이 다른 결말을 상상하는 데 있다면 더욱. 책을 덮고 '이랬다면 어땠을까'라고 해본 생각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어떻게 각색하고 했을지 기대된다. 로케이션부터 소품까지 많이 신경 썼다고 하던데 그해 여름을 영상으로 어떻게 옮겼을지도 무척 기대된다. 소설에 눈에 띄는 비유들이 많았는데 영화에서는 그 비유의 맛을 영상미와 음악으로 더해 놓았을 것이다. 일찍 예매를 해두었는데 이틀도 기다리기 어려울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더 앓이할 예정...총총 (캐스팅 완벽..흑)


두 사람이 나누는 지적인 대화들 또한 매력적인 지점이다. 편곡한 곡의 변주점을 눈치 채는 사람, 모네의 언덕을 아는 사람, 그리고 산클레멘테 신드롬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다시 없을 사람. (소설에서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로마의 북 파티 장면이다. 특히 북 파티를 연 시인이 '산클레멘테 신드롬'을 설명하는 장면은 가히 매력적) 북 파티 이후 로마 광장 거리에서 엘리오와 올리버가 보내는 허락된 밤의 시간은 세기말적이면서 동시에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그 모습 그대로이다. 첫사랑의 추억이 있다면 그 추억의 기간이 단 며칠일지라도 남은 몇 십년의 여생이 행복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일 테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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