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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Mar 23. 2018

엘리오의 연못에서 베르가모의 폭포까지

기대치 높은 원작 소설 팬까지 만족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원작 팬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각색이 산으로 가서 원작에 못 미치거나 너무 과장해서 책에서 중요한 부분이 가려지는 등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이 실망하는 지점은 꽤 많다. 그러나 드물게도 몇몇 작품은 원작을 뛰어넘기도 한다. 각본가와 감독을 잘 만난 영화들이 그렇다. 영화 장르에 맞는 각색부터 소설에는 없는 음악과 영상미를 더했을 때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온다. 이런 영화는 기대치 높은 원작 팬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영화를 먼저 본 관객이 거꾸로 원작을 찾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바로 그런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아이 엠 러브>(2009)를 굉장히 좋게 봤던 터라 개봉을 기대하고 있던 차였다. 마침 오스카 각색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개봉 전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관능적인 이야기에 매료되어 한번 읽고 두 번째 읽기 시작했다. 1부는 여러 번 읽었을 것이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처음 만나 감정을 숨기면서 신호를 보내고 기호학자처럼 해석하는 시기. 엘리오가 자신 속에 있는 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내면이 요동치는 시기. 전적으로 엘리오 시점으로만 전개되는 1부를 영화에 과연 어떻게 옮겼을지 많이 궁금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공식 포스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스카가 이 영화에 괜히 각색상을 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각색은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 미국의 유명한 감독이자 각본가인 제임스 아이보리, 그리고 각본가 월터 퍼사노가 맡았다. 이야기를 가감하거나 함축하는 방식, 비중이 커진 인물을 자연스럽게 녹이고 인물 간 지적인 대화를 더욱 지적으로 만드는 방식이 전문성이 없는 내가 보아도 정말 탁월해 보였다. 게다가 소설에 나온 대사를 거의 그대로 옮기거나 필요할 때는 올리버의 대사를 엘리오가 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원작을 더 잘 살린 느낌이 들게 했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엘리오의 시점뿐만 아니라 올리버의 시점도 담고 있다. 그래서 소설보다 전개 속에서 올리버의 감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 올리버가 계란을 먹으면서 말하듯, 나도 나를 잘 알아서 소설을 한번 읽고 나자 두 번 읽을 것을 알았고 두 번 읽으니 세 번 읽을 것을 알았다. 영화도 그랬다. 개봉일 아침에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한번 더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바로 다음 상영시간에 두 번째로 영화를 봤다.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면 처음에 놓쳤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흐름과 연기를 따라갔다면 다음에는 음악이나 영상의 색감과 톤, 배우의 의상, 배경, 소품 같은 것들이 보인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그런 섬세한 부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텍스트를 영상으로 옮기는 복잡하고도 방대하며 오랜 작업과 그 과정에서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달까.




복숭아 같은 사랑을 담은 소설,

복숭아 같은 사랑의 질감과 향과 맛까지 담은 영화


이 영화는 원작을 아주 잘 살린 영화이기 때문에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산 클레멘테 신드롬 내용이 빠진 게 개인적으론 아쉽지만 영화에서는 빼야 할 장면임에는 동의한다.) 오히려 소설보다 더 좋게 봤다. 앞선 글에 썼듯 엘리오와 올리버의 복숭아 같은 사랑은 영화에서 색과 모양과 향과 맛과 과즙을 얻어 생생하게 그려졌다. 건강한 햇빛에 잘 익어서 불그스레하고 탐스러운 복숭아. 그 복숭아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과즙을 터트리고 싶은 충동. 그리고 그 과즙을 맛보고 나누었을 때의 관능. 어느새 과즙은 속절없이 빼앗기고 단단한 복숭아 씨앗만 남몰래 숨기고 있어야 하는 헛헛함. 영화에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복숭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복숭아의 모든 것. 복숭아 같은 사랑의 모든 것.



소설의 1부는 영화에 거의 비슷하게 옮겨졌다. 소설에서 엘리오가 올리버를 탐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영화에선 내레이션으로 읊으면 어쩌나 내심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엘리오의 강렬하고 관능적인 내면은 엘리오 역을 연기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로 모두 채워주었다. 시선과 눈빛과 입술을 깨무는 연기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엘리오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굉장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이다. 사실 올리버 역을 연기한 배우 '아미 해머'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티모시에게 홀리듯 빠져버렸다. 영화 중반 이후로 갈수록 엘리오는 변한다. 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여름을 지루해하던 소년에서 여름이 가지 않기를 바라는 소년으로. 유대인이기를 감추었던 소년에서 유대인임을 보여주는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소년으로. 자신은 다 컸으니 밤에 집 밖으로 나가도 신경 쓰지 말라고 소리치던 소년에서 환한 대낮에 기차역으로 자신을 데리러 와줄 수 있냐고 울먹이며 묻는 소년으로. 티모시는 자신을 인정했다가 혐오하고 혐오했다가 다시 받아들이는 열일곱 살 엘리오의 감정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소설의 2부 내용부터 영화에는 조금씩 다르게 그려진다. 소설과 다르게 바뀌거나 추가된 장면들도 있다. 이런 부분들이 영화를 더욱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만들어서 원작을 뛰어넘는 변곡점이 되는 것 같다. 


소설에는 엘리오네 별장이 해안가에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에는 강가 주변이다. 그래서 엘리오의 장소인 해안가 인근 '모네의 언덕'도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모인 비밀스러운 연못가로 바뀐다. 엘리오의 장소에 올리버가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한 말은 연못 "물이 너무 차갑다"는 것이었다. 엘리오가 아무도 보여주지 않은 자신만의 장소를 올리버에게 소개하는 부분은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엘리오의 공간이 언덕이 아닌 연못으로 바뀌면서 '물'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게 된다. 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바닷물이 아닌 호수나 강물, 연못과 유사한 물로 등장한다. 




엘리오의 연못에서 베르가모의 폭포까지


영화에서 물은 여러 형태의 변주되며 등장한다


물병

올리버가 별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올리버는 엘리오의 친구들과 배구 경기를 하고(소설에서는 테니스) 물병을 든 엘리오에게 달려와 그의 물병을 낚아채고 자신이 마신다. 올리버는 자연스레 엘리오의 어깨를 잡고 마사지를 하고 엘리오는 그의 손길에 짜릿함을 느낀다.


농어

소설에서는 정원사이나 영화에서는 운전기사와 정원사를 겸하는 안키세스는 강가에서 큰 농어를 잡아온다. 농어는 안키세스의 손에서 힘없이 뻐금대고 엘리오는 장난스럽게 농어의 입모양을 따라 한다. (소설에서는 안키세스의 물고기가 '사랑하는 이의 시신에서 도려낸 심장'으로 변주된다. 그에게서 얻은 것은 심장뿐이라는 옛이야기에 비추어 비유한 표현. "내가 삶에서 이룬 건 그의 심장과 셔츠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키세스의 물고기처럼 축축한 셔츠에 뒤덮인 그의 심장."_p.210)


호수에서 건진 조각상

엘리오는 고고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호수 속에서 발굴한 고대 조각상을 보기 위해 호숫가로 향한다. 호수 깊은 곳에서 건져 올려진 조각상에 매혹된 엘리오와 올리버는 조심스레 조각상을 매만진다. 조각상은 팔이 부러져 있고 부러진 팔로 엘리오와 올리버는 간접적인 악수를 한다. 이 호숫가에서 수영하며 처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크게 부른다.




연못

엘리오의 비밀장소는 연못이다.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바로 모인 곳이라 물이 차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자신의 연못으로 초대한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비밀 장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사람이다. 올리버는 물이 차다고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 물장난을 친다. 이 장소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가에 들러 함께 마실 물을 얻어 마신다. 




강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엘리오와 올리버는 함께 강가로 수영을 하러 간다. 엘리오는 왠지 모를 후회와 욕지기가 밀려왔고 그에게 아침 수영을 하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와 함께하는 마지막 일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엘리오는 자기혐오로 뒤덮인 혼란 속에서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 밖으로 꺼냈던 자신을 다시 물속에 집어넣으면 자기혐오를 씻을 수 있을 것처럼.


과즙

엘리오가 복숭아로 자위하는 장면에서 복숭아 과즙이 그의 몸 위로 떨어지는데 나중에 잠든 그를 발견한 올리버가 그 과즙을 핥는다. 그런 올리버를 보고 엘리오는 그와 더 나눌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하고 그를 안고 울고 만다.



물속에 감춰져 있던 것을 물 바깥으로 꺼낸다. 강가에서 농어를 낚고, 호수 속에 빠져 있던 조각상을 꺼낸다. 게다가 이 조각상은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선물이었으나 호수에 빠진 것이었다. 엘리오는, 물속에 살았으나 물 밖으로 꺼내어진 농어를 따라 하며 장난을 치고 조각상을 조심스레 만지고 살핀다. 엘리오는 물속에 있는 것과 같았던 자신의 감정을 물 밖으로 꺼내어 올리버에게 보여주고 이내 올리버를 자신의 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물을 함께 나눠 마시고 함께 수영하고 과즙을 공유한다.


폭포

엘리오와 올리버는 베르가모로 여행을 떠나는데 거대한 폭포가 있는 산 중턱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폭포 소리를 가르고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산속으로 울려 퍼진다.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며 부르던 이름이 서로의 이름이었다면 베르가모에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부른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엘리오의 연못으로 흘러와 모였을 산 꼭대기의 물처럼 폭포라는 물의 근원을 찾아간 여정은 두 사람에게 너무도 적절한 것이었다. 거대한 폭포가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폭발적으로 하강하는 모습은 두 사람의 감정과도 닮아 있다. 물속에 잠겨 있다가 혹은 숨겨 두었다가 마침내 바깥으로 꺼냈을 엘리오의 감정. 그 물속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너무나 차가웠지만 그래도 물 안으로 들어간, 그래서 자신으로 인해 그 물을 망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웠을 올리버의 감정. 두 사람의 비밀 같던 그 감정은 그들을 현실의 어떤 잣대도 없는 곳에서, 물의 근원지에서 자유롭게 폭발하는 것이다. 베르가모에서 엘리오와 올리버는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한다.




베르가모에서의 마지막 밤 엘리오가 꾼 꿈처럼 달콤했던 순간은 짧기만 했고 두 사람은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간다. 올리버는 기차를 타고 떠나지만 엘리오는 도저히 혼자 갈 수 없었는지 집에다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후 별장 인근으로 돌아온 엘리오가 마르치아와 다시 마주치는 장면은 책에 없는 내용이다. 마르치아는 엘리오에게 차이다시피 한 상태라 그에게 화를 내도 이상할 게 없지만 그녀는 엘리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치 너의 슬픔을 잘 안다는 눈빛으로. 엘리오와 올리버가 베르가모로 여행을 떠났을 때 엘리오의 부모님은 올리버를 잠시 만났던 키이라와 마르치아를 저녁식사에 초대하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그 식사 자리에서 무언가 오고 가지 않았을까 싶다. 마르치아는 이미 처음부터 짐작을 하고 있었겠지만. 마르치아는 엘리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뒤 평생 친구로 남자고 제안한다. (이 영화는 사랑 영화지만 '사랑해'라는 대사는 마르치아가 엘리오에게 하는 것이 전부이다.) 엘리오는 마르치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작지 않은 위안을 얻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와 나눈 따뜻한 대화에서 엘리오는 자신의 느끼는 모든 감정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프다고 잊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엘리오의 연못은 그가 받아들인 감정만큼 그를 이해해준 사람들의 마음만큼 한층 따뜻하게 그리고 더 깊고 넓어졌을 것이다. 




폭포, 그 이후


시간이 흘러 겨울이 오고 엘리오는 올리버의 약혼 소식 듣는다. 그와의 전화통화에서 올리버는 엘리오를 올리버로, 엘리오는 올리버를 엘리오로 서로를 나지막이 부른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니까. 전화를 끊고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서 장작을 바라보고 눈물 흘린다. 엘리오의 상징과도 같았던 물과 상반되는 불 앞에서. 그의 뒤로는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물의 또 다른 형태를 하고서. 뛰어넘어야 할 것을 마주하고 이겨내면 성장하듯 엘리오는 자신의 연못을 더 깊고 넓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형태를 바꿀 수도 있다. 이미 거대한 폭포를 마주했던 엘리오니까. 불 앞에서,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훔치던 엘리오는 "엘리오"라고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이제 자신을 '올리버'가 아닌 '엘리오'라고 부르는 그 세계로 돌아오며 영화는 끝난다.


엔딩 씬은 엘리오가 난로가의 불을 바라보며 슬픔과 기쁨과 허무함이 교차하는 착잡한 표정으로 우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는다. 그리고 흐르는 음악.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며 끝나는 엔딩컷까지. 마지막까지 완벽한 엔딩으로 그 좋았던 원작 소설의 마무리까지 모두 잊게 할 정도였다.






속편 제작 소식


감독이 두 배우와 두 인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 속편을 제작 중이라고 한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15년 뒤 미국에서 재회한다는 내용인데, 소설의 4부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슬픔을 담을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갈지 기대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소재와 표현면에서 여러모로 견줄 수 있는 유사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비포 시리즈'처럼 이어지는 건 아닐지. 현실이란 잔혹함 앞에 놓인 엘리오와 올리버를 본다면 마음이 아플 테지만. 속편이 없어도 완벽한 엔딩이었지만 그래도 속편을 만들어주신다면야 너무나 행복하게 볼 것 같다.


소설을 또다시 읽고 있는데 소설에 담긴 작가의 탁월한 비유들과 지적인 대화들이 정말 좋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원작을 살리고도 남는 작품을 또 만들어냈다. 기대치가 높은 원작 팬을 만족시키고도 남을 작품.







좋았던 장면들.

- 소설에서 올리버와 엘리오의 현명한 친구였던 '비미니'를 영화에서는 엘리오 어머니 역에 부여한 것. 어머니의 비중을 크게 함으로써 엘리오의 조력자를 아버지에서 부모님으로 확실하게 확장했다. 

- 코피 흘린 엘리오를 찾아가 발을 마사지해주고 가볍게 키스하는 올리버. (소설에는 식탁 밑 발 스킨십이었다.)

- 소설에서 엘리오는 올리버가 날마다 바꿔 입는 수영복 색깔로 그의 하루 기분을 예측하는데, 영화에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수영복 색깔마다 한 컷씩 잡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 부분이었지만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런 디테일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 저녁 늦게까지 올리버가 돌아오지 않자 초조하게 목걸이를 물면서 기다리는 엘리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노이즈 짙은 색감 장면들.

- 철 좀 들어. 자정에 봐. 올리버의 쪽지를 읽고 아침부터 수시로 손목시계를 살피던 엘리오가, 올리버가 집에 도착한 소리를 듣자 손목시계를 피아노 위에 풀어놓은 걸 잊고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던 장면.

- 베르가모 마지막 밤에 엘리오가 꾼 꿈과 잠든 엘리오를 바라보는 올리버의 착잡한 표정.

- 베르가모에서 떠나는 올리버에게 "여권 챙겼어요?"라고 묻는 엘리오. 그 아무렇지 않은 물음이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 우주의 파편. 올리버가 연구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저서. 이 책에 올리버가 써놓은 코멘트에도 흐르는 강물이 등장한다. (“흐르는 강의 의미는 모든 것이 변화하여 우리가 그것들을 두 번은 만날 수 없음이 아니지만 어떤 것들은 오직 변화함으로써 같은 상태로 남는다.”)

- 자연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낸다는 엘리오 아버지의 말. 그리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단 한번만 주어진다는 말도.



왓챠에 쓴 코멘트

원작을 넘어서는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엘리오의 연못으로 시작해서 베르가모의 폭포로 끝나는, 그리고 난롯불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엔딩까지. 각색, 감독, 연기, 영상, OST까지, 소설에 영화라는 옷을 입혀서 더 멋진 태가 나게 했다. 완벽.


원작 소설에 원서, OST까지 구입했는데 오디오북과 DVD, 공식 포스터를 비롯한 굿즈까지 벼르고 있다. 

다람쥐 같은 덕후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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