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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Apr 13. 2018

조셉의 레몬과 로잘리의 부사(adverb)

배우 연기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한 영화 <몬태나>

영화 <몬태나>의 전체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 영화 <몬태나>가 곧 개봉한다.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으나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다. 국내 개봉작 <빅쇼트> 이후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난 크리스찬 베일.




조셉의 레몬과 

로잘리의 부사(adverb)



조셉과 레몬

미국 땅에서 원주민 부족을 붙잡고 몰아내는 '공신'을 세운(공신을 세우다는 말은 얼마나 주관적인지) 전설적인 대위인 조셉. 그의 첫 등장 역시 원주민 가족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고 연행하는 장면이다. 부하들을 시켜 원주민을 체포하는 조셉은 레몬을 통째로 씹어먹고 있는데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신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평온하다. 붙잡혀 울부짖는 원주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 한 장면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 조셉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이 직접 표현했듯 감정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이제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조셉’은 수십 년 동안의 전투로 모든 트라우마를 흡수하고 있는 사람이자, 완전히 감정적으로 봉쇄당한 사람이다."


'조셉'은 수십 년 동안의 전투로 모든 트라우마를 흡수하고 있는 사람이자, 완전히 감정적으로 봉쇄당한 사람이다.

그런 조셉에게는 유일한 감정, 원주민에 대한 증오와 적대심만 남아있다. 조셉은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잃은 동료들에게 깊은 전우애를 느끼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을 죽게 만든 원주민을 뼛속 깊이 경멸하고 있다. 조셉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전까지는 오로지 적대심으로 점철된 단편적인 인물이다.


왼쪽부터 토미, 데자르댕, 조셉. (데쟈르댕은 프랑스 출신 훈련병으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했다. 크리스찬 베일과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고.)


그의 오랜 벗이자 전우인 '토미'는 그에게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병세가 깊어서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 같다고. 조셉이 수십 년 지속된 전투에서 감정을 봉쇄해왔다면 토미는 노출하고 흡수한 사람이다. 양심과 죄의식, 증오와 적대감이 뒤엉킨 감정의 대혼란을. 토미는 자신이 처음 사람을 죽인 때를 기억하고 있다. 이후 그는 전투에서 수많은 목숨을 빼앗고 무수히 많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조셉처럼 그것을 봉쇄했다고 믿었지만 토미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자신을 창으로 찌른 원주민을 찾아내 똑같이 복수했던 조셉과, 토미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자살한다.)


조셉은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옐로 호크를 그의 고향인 '곰의 언덕' 몬태나로 안전하게 이송하는 것. 옐로 호크는 오래전 전투에서 조셉의 전우들을 죽였던 원주민 추장이었고, 조셉은 전투 끝에 그를 체포해 칠 년 동안 진영에 수감해두었다. 이제 옐로 호크는 암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원주민을 증오하는 조셉과 달리 본부 밖 여론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원주민과의 전투는 미군이 그들의 땅을 일방적으로 빼앗았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곰의 언덕 원주민 추장인 옐로 호크의 귀향을 바라는 여론과 이를 받아들인 대통령의 명에 따라 공교롭게도 '전설적인 대위'인 조셉이 마지막 임무로서 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조셉은 대령에게 임무를 듣고 분노한다. 전투에서 옐로 호크가 무자비하게 죽였던 자신의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씩 거론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는 곧 퇴역을 앞두고 있었고 임무를 거절하면 명예로운 퇴장이 보장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 조셉은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권총을 들고 본부에서 떨어진 들판으로 나가 자살을 해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괴로움에 울부짖는다. 


추장 옐로우 호크와 조셉


옐로 호크와 그의 가족을 이송하는 날, 조셉은 토미를 비롯해 몇몇 부하들을 뽑고 곰의 언덕인 몬태나로 여정을 시작한다. 본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조셉은 '퍼레이드는 끝났다'며 옐로 호크를 죽이려고 하지만 옐로 호크는 조셉이 알던 추장이 아니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소." 옐로 호크는 두 손을 든 채 조셉에게 말한다. 조셉은 그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옐로 호크에게 수갑을 채우고 떠날 채비를 한다.


몬태나로 향하는 여정에서 조셉은 수십 년간 봉쇄했던 자신의 감정을 하나씩 꺼내 들춰보게 된다. 때 묻은 천에 꼭꼭 숨겨진 작은 구슬을 꺼내듯 조셉은 조심스럽고 천천히 변해간다. 악랄한 원주민인 코만치 부족의 습격 후 도움을 준 옐로 호크의 수갑을 풀어주게 되고, 코만치 부족의 습격에 일가족을 잃은 '로잘리'를 만나고 그녀에게 깊이 공감한다. 


조셉 일행은 몬태나로 향하는 길에 한 마을을 경유하는데, 여기서 찰스 병장을 데리고 가게 된다. 찰스는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조셉을 보좌했던 부하였는데 이제는 원주민 일가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군사 재판을 기다리는 범법자 신세였다. 수갑을 찬 찰스는 조셉에게 말한다. 


당신이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원주민을 죽였는지 알고 있다, 나는 이전 전투에서처럼 원주민을 죽인 것뿐이다, 여기 이렇게  묶여있는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었다.


조셉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상태였기에 찰스의 도발에 동요하지만 그 동요는 토미가 끝을 낸다. 비가 쏟아지던 밤, 토미는 조셉에게 "나는 이제 떠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토미는 잠든 옐로 호크를 깨워 품 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선물한다. 잠시 후 찰스는 보초를 서던 '키더' 중위를 죽이고 도망치고 토미가 그를 따라간다. 다음날 조셉 일행은 토미가 죽인 것으로 보이는 찰스와 자살한 토미의 시신을 발견한다. 조셉의 동요는 여기서 사실상 끝이 난다. 토미의 죽음으로 큰 상실감에 휩싸인 조셉과 로잘리는 연대감을 느낀다. 



로잘리와 부사

로잘리는 코만치 부족에 의해 일가족을 잃고 미치기 직전에 이렀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원주민을 향한 적대감이 극에 달하지만 로잘리는 조셉 일행과 동행하면서 점차 변하게 된다. 습격 전투에서 죽은 코만치 부족의 시신에 복수하듯 총을 쏘지만, 누군가에 의해 무자비하게 살해된 원주민 시신을 보고 말없이 지나치기도 한다. 로잘리의 변화는, 경유지에서 묵었던 한 대위의 집에서 들은 잘못은 우리에게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고 옐로 호크 가족이 보여준 호의 때문이기도 하다. 로잘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딸들에게 '부사(adverb)'의 활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어린 딸들은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문장에 부사를 추가해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로잘리는 마치 부사로 가득 찬 것 같았던 단란한 가정을 순식간에 잃는다. 그녀의 삶을 풍부하게 꾸며주었던 일가족은 차게 식었다. 로잘리는 "내 가족은 내가 직접 묻겠다"며 조셉과 부하들의 도움을 거절하고 통곡한다. 자신의 '부사'를 땅에 묻고 난 뒤 로잘리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 그녀에게 옐로 호크의 딸은 자신의 옷을 내어준다. 조셉은 로잘리가 겪은 상실의 고통과 증오를 알고 있기에 그녀를 묵묵히 배려한다. 로잘리는 우연히 함께하게 된 몬태나로의 여정으로 가치관이 변한 인물이며, 조셉의 동요와 혼란의 과정에도 직접 개입하고 있기에 그와 유사성이 큰 인물이다. 


로잘리와 조셉


이후 일행은 곰의 언덕에 도착하지만 옐로 호크는 지병과 노쇠로 자연사한다. 조셉은 부족 전통에 따라 제를 치러준다. 곰의 언덕을 '자기 땅'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이 나타나 옐로 호크의 시신을 치우라고 협박하자 조셉은 물러서지 않는다. 이 팽팽한 긴장감을 끊는 것은 '로잘리'다.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로잘리였고 최후의 처리는 조셉이 했다. 토미로 인해 조셉의 동요는 끝났고 로잘리로 인해 조셉의 단편적이었던 적대감은 그 모습을 바꾸었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로잘리의 굳건한 표정은 이제 다른 형태의 부사가 생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녀가 당긴 방아쇠는 조셉은 물론 그녀 자신의 '단편적인 적대감'을 끊는 것이기도 했다.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에 박수를)


엔딩에서 조셉은 로잘리와 헤어지지만 그녀가 타고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맨 끝 칸에 올라탄다. 몬태나는 조셉의 종착역이자 출발지점이다. 몬태나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조셉과 그 이후의 조셉으로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레몬을 크게 한입 씹어먹고도 표정의 변화조차 없던 첫 장면의 조셉과, 떠나는 기차를 복잡한 심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의 조셉은 같은 사람이나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감정이 봉쇄된 얼굴을 했던 조셉은 그 감정을 서서히 꺼내게 되자 눈빛과 표정이 조금씩 바뀐다. 크리스찬 베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인물을 이토록 묵직하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


곰의 언덕에서. 조셉의 얼굴에 빛이 절반만 드리워져 있다. 반은 밝고 반은 어둡다.



종착지가 아닌 경유지

몬태나


영화의 원제는 <Hostiles>이다. 나는 '대적점에 놓인 관계들' 혹은 '적대적인 감정들'로 이해했다. 국내 개봉은 제목을 <몬태나>로 바꾸었다. 메인 카피는 '모든 증오가 끝나는 곳'이다. 원제목이 몬태나로 향하는 1천 마일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복잡하고 입체적인 감정에 집중한 것이라면, 국내 개봉 제목은 그것이 모두 응집되고 종결되는 여정의 끝, '종착지'에 집중한다. 애매한 의역 보다야 오히려 적절한 제목 선정이라고 본다. 엔딩 덕분에 몬태나는 종착지로만 머물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몬태나라는 곳 역시 과정이고 경유지이다.  조셉과 로잘리는 몬태나로 와서 몬태나를 떠난다. 엔딩 후의 여백, 몬태나 이후의 조셉과 로잘리를 상상해보는 여운이 짙다.


<몬태나>의 원제와 미국 공식 포스터






왓챠 코멘트)

긴 호흡 대비 다소 넘치듯 명확한 메시지. 영화도 영화지만 연기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명확한 상징의 나열이 많은 느낌이었다. 초반에 조셉이 읽던 <줄리어스 시저>부터 후반부의 옐로 호크와 조셉의 악수 장면, 옐로 호크의 손자에게 <줄리어스 시저>를 건네주는 조셉까지. 영화의 호흡이 길어서 형식적으로는 부사를 절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질들 덕분에 메시지 전달 면에서는 오히려 친절했던 편이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라고 했다. 글쓰기와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굳이 비교해본다면 메시지 표현법, 즉 '형식'을 옆에 놓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몬태나>의 메시지는 명확했더라도 형식적(영상, 연기, 편집)으로는 부사를 절제한 듯 담백히 읽히니 결코 지옥길은 아닌 셈이다.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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