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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Jun 01. 2018

이제, 웬디의 그늘은 다채롭다

영화 <스탠바이, 웬디> (2017)


벤 르윈, <스탠바이, 웬디> (2017년) 

2018.05.30 개봉




그늘이 있는 사람


무슨 일이든 확신에 차서 멋드러지게 해내는 사람, 어떤 일에도 상처 받지 않거나 상처 받아도 무던히 넘어가는 사람, 자신의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항상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람. 살다보면 종종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때면 그들의 밝고 쿨한 모습이 부러웠고 닮고 싶었다. 그러나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은 분명 있다. 한때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자책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 지금은 나의 결을 잘 알고 있고 그런 사람은 나와 결이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빛이라면 나는 그늘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일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며 확신을 두려워하고 상처에 예민하다. 내면에 집중된 에너지 때문에 주변인에게 신경쓸 겨를도 없다. 어디서든 톤 다운을 하는 그늘 같은 사람.


결이 비슷해서일까, 나는 그늘이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한때 품고 다니던 문장도 이런 것이었다. "Everybody's got a dark side." (켈리 클락슨 노래 가사 한구절이다.) 한때는 모두에게 다크 사이드가 있다고 믿었지만 살다보니, 그런 그늘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강한 빛만 내뿜는 사람들 앞에서 그늘을 품은 이들은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빛 앞에서 그늘은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니깐. 그래서 사회에 나와 많은 사람들과 엮이다보면 그 그늘을 숨겨야만 할 때가 많다, 아니 숨겨야만 한다. 

예민해서 쉽게 상처 받고 그래서 마음을 닫거나 쉽게 열지 않는 사람들. 자기만의 세계를 더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 작은 감정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여린 사람들.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더 끌렸을 것이다. 작은 그늘을 품고 틈이 나면 그 작은 그늘 안에서 쉬는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완벽히 그늘을 감추었는지 아니면 빛만 가득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인지, 그늘이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자신만의 그늘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나는 이런 결을 가진 사람들을 문학과 영화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문학과 영화 속에서 그런 결의 사람들은 대부분 글을 쓰곤 했다. 현실에서도 묵묵히 혼자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나조차도 혼자 글을 쓰고 있으니, 그들도 그렇다면 만날 도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웬디의 그늘

<스탠바이 웬디>의 주인공 '웬디'는 나와 완벽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결을 지닌 인물이었다. '스타트렉' 덕후인 웬디는 스타트렉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줄줄 외고 있을 정도의 능력자. 그녀 역시 글을 쓴다. 스타트렉의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상해 시나리오를 쓴다. 무려 472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시나리오. 그마저도 줄줄 외고 있다.

웬디는 매일 지키는 세세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어긋나는 상황들에 극도로 예민하다. 요일별로 스웨터 색깔을 정해놓고 입고 특정 스트릿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목걸이에 걸어 놓은 메모패드에 꼭 기입해두고 외운다.


그런 웬디가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로 결정하면서 웬디의 매우 규칙적인 일상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웬디는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출품하고 보호소에서 나와 언니 '오드리'와 함께 살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친다. (아마도 엄마의 죽음 이후 웬디는 보호소에 머물 게 된 듯 하다) 오드리는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팔고 남편과 갓 태어난 딸 '루비'와 이사를 가려 한 것이다. 웬디는 자신의 계획이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우체국에 시나리오를 보낼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웬디는 보호소 근처 몰에 있는 '시나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갈 때도 자신만의 규칙을 되새기며 지킨다. '마켓 스트릿'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나가지 않을 것. 그녀가 가는 길은 매번 정해져 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웬디의 일상도 매우 규칙적이다. 정해진 길을 걸어가서 일을 하고 보호소로 돌아와서 글을 쓰는 것. 


그랬던 웬디가 시나리오를 LA에 파라마운트 영화사에 직접 전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처음으로 마켓 스트릿을 건너고 더 먼 곳까지 떠나게 되는 것이다. 웬디의 일상은 보호소를 나선 순간부터 완전히 변한다. 며칠째 같은 컬러의 스웨터를 입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면서도 웬디는 LA로 직진, 또 직진한다. 누군가 웬디를 발견하고 보호소로 보내버리면 시나리오 제출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되니 웬디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헐리우드로 향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도둑질을 당하고 시나리오 일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녀가 LA에 도착해 파라마운트사에 시나리오를 직접 제출하기까지 겪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보호소를 떠나기 전의 웬디를 관객은 알고 있기에 더 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환경과 상황(평상시라면 기겁을 했을 것이다)을 의연히 버텨내는 웬디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웬디의 그늘은 다채롭다

웬디를 LA까지 직진하게 만든 원동력은 오직 하나. 

스타트렉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자신의 작품에 들인 정성이다. 시나리오를 무사히 제출하겠다는 일념만으로 그녀가 넘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상황들을 어떻게든 넘긴다. 시나리오 일부를 잃어버렸을 때조차 자신이 외우고 있는 대본을 직접 써서 준비한다. 파라마운트 사에 도착해서 시나리오를 제출할 때, 우체국 소인이 찍히지 않은 작품은 받지 않겠다는 담당자의 말에 웬디는 버럭 호통을 친다. 


당신이 글 쓰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조차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는지,
글을 쓰고서도 몇번을 지우고 고치는지,
당신이 글쓰는 사람 마음을 아느냐고!

재치 있게 상황을 모면해서 시나리오 공모전에 제출한 웬디. <스탠바이, 웬디>는 결국은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웬디도 그늘이 있는 사람이고 그 그늘 속에서 혼자 스타트렉을 생각하며 그것을 글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웬디는 자신의 그늘을 밖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지치지 않고 쓰는 사람. 자신의 글에 가치를 스스로 부여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가치를 외부에도 알릴 자신이 있는 사람. 이제 웬디는 자신의 그늘을 이렇게 확장시키고 다채롭게 만들었다. 자신의 그늘을 그늘로만 생각하지 않았을 때. 그늘의 색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웬디의 그늘은, 그래서 이제 누구보다 다채롭다. 



웬디의 줄무늬 스웨터

마지막에 웬디는 영화 초반 나왔던 '요일별 스웨터'와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 하늘색과 흰색이 섞인 스트라이프형 스웨터를 입고, 초반에는 멈칫하며 피했던 조카 '루비'를 기꺼이, 그리고 능숙하게 품에 안는다. 웬디는 이제 규칙에 벗어난 새로운 감각, 자극, 환경에 한결 유연해진 것이다. 

무사히 시나리오를 제출하고 돌아가던 중, 오드리는 웬디에게 묻는다. "엄마가 있었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이에 웬디는 '엄마는 이제 없으니까 뭐라고 하실지 알 수 없지'라며 매우 현실적인 답을 한다. 엄마의 부재 이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웬디는 LA로의 여행 덕분에 자신의 영역을 한층 더 넓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글 쓰는 사람의 성장기랄까. 지치지 않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웬디의 확신과 도전은 기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웬디는 지금도 쓰고 있을 것이다.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매일 '스탠바이'를 하면서. 랩탑을 열고 시나리오 속 이야기로 빠져들면서, 스스로 큐사인을 하는. (영화 초반에 웬디는 감정과잉으로 고통스러울 때 주문처럼 '스탠바이'를 외친다. 보호소에서 외는 '스탠바이'는 숨을 고르며 진정하는 단계일 텐데, 중의적으로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그늘을 넓혀갈 준비를 할 때이기도 했으니까.)


나의 그늘을 사랑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믿는 것.

줄무늬 스웨터를 입을 날이, 꾸준히 쓰다보면 내게도 찾아올까. 웬디 덕분에 조금은 확신이 생겼다. 이제는 '스탠바이'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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