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이십 대를 지나며
어제 사진 정리를 하다가 이십 대 초반에 찍은 사진들을 발견했다. 사진 속 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행복에 가득 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근 사진을 보면 그렇게 환하게 웃는 사진이 없다. 별로 즐거운 일이 없으니 웃을 일도 없는 것이지.
스물다섯 살, 회사에 갓 입사했을 무렵 같은 팀 부장님이 내 나이를 듣더니 부러워하며 자신도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어리석게도 괜히 우쭐했다. 반응이 없던 삼십 대 초반 대리님 한 분이 말했다. 자신은 다시는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십 대가 너무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돌아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 뇌리에 꽤 깊이 박혔다. 지금도 그 분위기와 그녀의 단호한 억양, 손사래를 치며 치를 떨던 표정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꽤 충격을 받았었다.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십 대를, 자유 그 자체인 이십 대를 부러워하지 않다니.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 자유 그 자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모르고..)
이제는 그 말을 이해하게 됐다. 누구보다 격하게 이십 대 후반을 번뇌 속에 보냈으니까. 이 끔찍한 혼란을 어서 끝내고 싶지만 이십 대가 끝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덕질도 쉬고 인생의 노잼 시기가 사상 최장으로 길어지고 있다. 원래도 시니컬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무얼 해도 시니컬. 밥 먹는 것도 왜 먹나 싶다.
머리 하는 데 돈 쓰는 걸 좋아하지 않은데도 비싼 파마를 해보았다. 기분 전환을 해보려고 한 건데 전환은커녕, 머리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이러나저러나 무념무상.
그 어디에도 의견을 낼 데가 없어서(사실 받아들여지는 데가 없어서) 혼자 지친 것 같다. ‘그냥 내가 참고 넘어가고 말지’가 쌓여서 나를 누른다. 그래, 네가 맞다고, 알겠다고, 내가 하겠다고, 넘어가자고, 하고 속상한 마음은, 진짜 내 생각은 모두 내 안에 숨겨놓는다.
자리를 팍 차고 일어나 소리를 냅다 지르고 싶다. 마구 때리고 부수고 싶다. 그동안은 뭔가를 만드는 취미를 했다면 이제는 뭐라도 해체하고 싶다.
문장 하나를 두고 이렇게 저렇게 고쳐보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하면서 막 쓴다.
내가 알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싶다가도 웬걸. 이제는 그것조차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고 나면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색깔도 취향도 성격도 온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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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난치병이고 환멸은 불치병이다.
며칠 전 새벽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인스타에 이렇게 내뱉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서운할 정도로 정을 주지 않는 나인데도, 그런데도 나를 나름 좋게 생각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내 푸념 섞인 글에도 짧게든 길게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 이번엔 학교 선배가 댓글을 달아주었다.
"영화 <데몰리션>이 생각나네."
최근에 시니컬함이 너무 심해져서 스스로도 한계라고 느끼던 시점이었다. 심지어 영화에도,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영화에도, 시큰둥하던 차였다. 오직 문학만이 간신히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오직 문학만이. 아주 극소수의 문학만이 간신히. 그만큼, 내가 바라던 내 모습, 내가 여태껏 가꿔왔던 내 모습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데몰리션>을 봤다. 아내를 갑자기 잃었지만 남들 같은 슬픈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 사회가 요구하는 일반적인 주류의 감정을 잘 포장하는(혹은 흉내내는) 이는 대접을 받고, 비주류의 감정이라도 있는 그대로를 순수히 드러내는 이는 홀대를 받는 세상.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내기 위해 혹은 외면하기 위해, 작은 물건부터 하나씩 부수고 분해하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아내와 함께 살던 집까지 부수기 시작한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집을 부수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남자는 자신의 감정, 몰랐던 사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 멍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잊고 지내려고 마음먹었던 영화는, 그렇게 가만히 와서 내 앞에 영화 한 편을 쓱 내려놓고 간 것이었다. 영화를 지우면 내게는 남는 것이 없다. 열다섯 살, 영화에 처음 빠졌던 그 순수했던 마음까지 시니컬하게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언제나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나를 설명해주고 위로해주고 대변해주고 감싸주는 존재.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표현해주던 많은 상징들이 희미해지는 듯하다. 취향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면 할수록 하루에 주어지는 자유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다 해내기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해야 하는데 최근엔 영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었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쓰지 못한다. 그게 제일 참기 어렵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인다.
내가 하는 일이 맞는가 싶다가도, 일은 일일 뿐 다른 취미를 갖고 길러나가자며 힘을 낸다. 그러다가 자리를 박차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창문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고요고요 열매를 먹고 능력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Calm 능력을 쓰고 싶다. 밈뷸러스 밈블토니아를 구하고 싶고, 실렌시오 마법을 쓰고 싶다. 내게 휴식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모두들 이렇게 참고 사는데 나만 유난을 떠는 걸까?
ⓒaliceK
영화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