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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Aug 27. 2018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나를 좀먹었던 집착에 대하여.

쿠마모토 ⓒalicek

01.
누구나 작가를 꿈꾼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 작가가 되어 자신만의 책을 내는 것을. 나도 그랬다. 현실적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자기만족을 위해 독립출판도 해보고 그러면서 엉겁결에 얻은 작가라는 호칭에 혼자 미소를 짓기도 했었고. 브런치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모토로 만들어진 플랫폼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가가 되고픈 그 소망을 건드린 걸 테다. 많은 사람들이 품은 소망이지만 막상 본격적인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나요?"


글 쓰는 사람들, 특히 다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받는 질문일 것이다. 글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등 다양한 분야, 그래 솔직하게 돈 안 되는 분야라고 쓰자, 이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받아봤음직한 질문일 것이다. 그림 그려서 먹고살 수 있나요? 이거 하면 얼마 벌어요?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서슴없이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과연,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안 되면 굶지 뭐. 회사를 때려치우던 시절의 나는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했었다. 세상이 얼마나 혹독하고 매정한지 단 1퍼센트도 모르던 시절에. 나를 완전히 야생에 내던져 놓고 시험해보았다.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다고 내가 몸소 보여주자. 안 되면 뭐라도 하겠지!(숙연....) 다짐은 그렇게 했지만 계속 의심은 들었다. 독립출판에 도전해보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서 소설 강의도 들어보았지만 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점점 명확해졌다. 


글만 써서 먹고살 수는 있지만 절대 쉽지 않고,
그나마도 이따위로 글 써서는 먹고살기 힘든 것이 분명하다.


일시정지. 여기까지. 쿠마모토ⓒalicek


소설 강의를 해주신 선생님은 글을 쓴 지 십 수년만에 소위 '등단'할 수 있었지만 원고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인증'은 받았지만 당최 글을 쓸 지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등단하고 나서 한 삼사 년이면 문단에서 사라지는 작가들도 많아요."


작가 지망생은 오직 등단을 꿈꾸지만 요새는 등단이라는 허들을 넘었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부지런히 글을 써도 마땅히 쓸 곳이 없거니와 설령 쓴다고 해도 긴 글을 읽는 독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으며, 그렇다고 게으르게 쓰면 당연히 도태된다. 좋은 글은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쓰고 계속해서 고쳐 쓰고 힘들어도 쓰고, 지쳐도 쓰고, 끊임없이 써야 한다. 글 쓰는 재능도 물론 필요하지만 노력이 더 필요하다. 참신한 구상, 촘촘한 짜임새, 비상한 두뇌, 다 좋지만 무엇보다 엉덩이가 튼튼해야 한다. 글 쓰는 일은 협업이 필요하지 않은, 오직 혼자 하는 일이기에 자신을 채찍질하면서도 믿어야 하며 혼자 끌어주고 밀어주어야 하는 일이다. 글 쓰는 것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과 지치지 않는 끈기, 그게 필요했다. 


갈 방향에 맞는 차선에 선다. 서울 청담 ⓒalicek


소설 창작 강의를 들으면서 소설을 쓰는 기술보다는 소설가, 나아가 글 쓰는 사람의 자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문했다. 과연 나는 그만큼 글을 쓸만한 열정이 있는 걸까. 나는 과연 글쓰기가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없어도 살 수 있는 걸까. 


소설을 쓰겠다고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도 대부분 그랬다. 글에 관심이 있고 취미로 쓰는 것이지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이 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본격적으로 작가가 될 욕심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등단을 준비하는 분들도 있기는 했지만 많이 힘들어 보였다. 투자한 시간이나 분량이 곧 대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해도 잘 안 풀리는 지점이 오면, 자기 의심과 자기부정이 시작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슬럼프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글에도(문학이나 에세이의 경우) 트렌드가 있어서 이와 잘 맞지 않으면 객관적으로 잘 쓴 글도 결국 읽히지 않는다는 허들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어디에 초첨을 맞춰온 걸까. 덕수궁 ⓒalicek


02.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다. 


독립출판 이후로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점점 글쓰기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내가 쓴 글이나 책에 달린 악성 댓글을 보고는 더욱 힘들어졌다. 좋은 이야기만 듣고 살 수는 없는 것이지만 악평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던 것이다. 아직 내 글에 대한 스스로의 각오와 다짐이 굳게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받는 공격은 꽤 상처가 됐다.  


내가 쓰는 글에서 자기복제의 기운을 느꼈고, 경험과 취재의 부족을 느꼈고, 다작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고, 글 좀 쓴다는 건 재능이 아니라 꽤 많은 이가 가진 특기임을 깨달았고, 모든 것을 글쓰기에 쏟아 붓기에는 내겐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는 것도 느꼈다. 일단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는 글이 되는 순간 내 글에는 힘이 지나치게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글에서 풍기는 그 부정적이고 꼬인 냄새를 지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모아놓은 돈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카프카처럼 밤에만 글을 쓸 수 있는 직장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길과 길가와 인도. 덕수궁 ⓒalicek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라는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글을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내가 글쓰기를 사랑한 이유는 그 어떤 수단도 되지 않았기 때문임에도. 글쓰기는 번잡한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스스로 마음을 토닥이는 행위였고 나를 담아내는 그 자체였을 뿐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사랑했던 것인데, 내가 앞장서서 그것을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다시 물었다.

출판시장을 위한 것도, 익명의 독자를 위한 것도, 대단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 나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글을 썼고 그래서 글쓰기를 사랑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나는 오직 나를 위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 


해는 질 때 더 아름답다. 서울 망원. ⓒalicek


한참을 돌고 돌아와서 이제야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소극적인 작가이자 적극적인 독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지점도 그 시기였다. 나만의 기준이지만, 소극적인 작가란 일반적인 작가와 달리 대중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은 글, 주변 지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글 정도를 쓰는 사람을 말한다. 계속해서 쓰는 것이 어려워서 피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자신이 없다. 결국은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쉽게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잘 알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내게서 빼앗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 글을 더 보기 좋게 갈고닦을 것이고 가능한 만큼 쓰고 고쳐 써 나갈 것이다. 독자에게 더 많이 읽히기 위해, 누군가 정해놓은 트렌드에 따르는 글이 아니라 우선 '나'라는 독자를 만족시킬 만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동시에 적극적인 독자가 되려 한다. 글 쓰는 입장에서 내가 쓴 글을 날카롭게 볼 줄 알아야 할 것이고 다른 작가들의 글도 그렇게 접근할 줄 아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기로.



03.
우선 내가 행복해지는 글쓰기

서른을 앞두고 하나둘 내려놓게 된다. 인정하게 된다. 

우악스럽게 잡고 놓지 못했던 글 쓰기에 대한 집착. 그 집착이 만들었던 수많은 경우의 수들. 스무 살의 나는, 에세이스트도 칼럼니스트도 소설가도 프리랜서 작가나 능력 있는 에디터도 다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애는 집착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졸업 후 '돈벌이'라는 벽에 부딪치면서 그 집착은 나를 향한 흉기가 됐다. 그러면서 나는, 글 쓰기에 대한 조그만 희망을 주었던, 내가 읽고 쓴 모든 것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소설과 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던 내 기질을 탓했고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노력해서 이룬 사람들을 뜻 없이 질투했고 부러워만 했다. 악에 받쳐 쓴 글들은 당연히 형편없었다. 


수도 없이 스스로를 할복하고 나서 지쳤을 때 돌아본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훌쩍 흘러 간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손에 쥐었던 '가능성'들은 이미 모두 도망가버렸고 남은 것은 없었다. 나의 하찮음과 나약함을 제대로 마주하고 깊은 무기력에 빠졌다. 포기하고 힘들어하고 다시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포기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내가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깨닫는 데까지도 꽤, 정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려놓기. 서울 삼청동 ⓒalicek


가치관도 기준도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 조금씩 더 내려놓고 있다. 이런 못난 나를 스스로 보듬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퇴근하고 글을 써도, 주말에만 글을 써도 괜찮다. 글만 써서 먹고 살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자 다시 뭔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다. 이제, 좀 힘을 빼 볼 작정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것임에도 도대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는 글쓰기를 수단으로 몰아가지 않으려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글쓰기를 사랑해주기로. 우선 내가 행복한 글을 쓰기로, 그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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