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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Dec 23. 2020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영화 리뷰 <결혼 이야기>

영화 리뷰 <결혼 이야기>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 제일 끝에 위치한 우리 집 앞에는 항상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의자에 앉아 멀리 보이는 마운틴뷰를 감상하신다. 다행히도 우리 아파트는 2차선 도로로 인해 앞이 뻥 뚫려있어 나름 뷰가 괜찮다. 밖을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서 두 분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종종 봤다. 어느 날에는 나도 저렇게 둘이서 늙어가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를 웜톤 영화로 기억한다. 색감이 예쁜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노랗고 따듯한 느낌이 들어서 웜톤 영화라 표현했다.

주인공인 찰리와 니콜이 연극 감독과 배우로 나와서 그런가 영화가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독특한 연출기법과 색감이 합쳐져서 영화가 포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마음에 든 장면들을 몇 번씩 다시 돌려봤다. 잘 꾸며진 다이어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영상미와 달리 영화는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둘의 갈등이 안타까웠지만 찰리와 니콜의 심정 모두 이해 갔다.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과 어느 순간 멀어지게 되는 데는 대화의 부재가 크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고 깊어진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하는 걸까? 싶겠지만 사람 감정이란 게 어쩔 수 없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된다.

이 영화는 결혼하지 말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닌 현명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게끔 본보기가 돼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굴곡져 한 없이 다정다감하다가도 꼴도 보기 싫은 만큼 미워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 마법 같고 매일이 설레는 결혼보다는 무덤덤하더라도 서로 숨기는 거 없는 솔직한 결혼이 더 좋다고 영화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싸우신 날에는 의자에 앉지 않으신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저 양반은 맨날 저런다면서 서러워하시는 할머니를 위로해드린다. 얼마 안 지나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호호 두 분이 웃으실 걸 알기 때문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도 나이가 들어서 저렇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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