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케이크가 진열된 쇼케이스 앞에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다. 뵐 때마다 미소를 짓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마스크를 쓰셔도 미소가 보였다.
" 저 할아버지 치매 신 것 같아요. 오셔서 똑같은 말만 하고 그냥 나가세요."
처음 할아버지를 보고 의아해하던 나에게 다른 직원이 해줬던 말이었다. 신기하다는 듯 웃으며 말하는 직원이 그날따라 멀게 느껴졌다.
오늘은 할아버지께 체온 측정과 명부 작성을 부탁드렸다. 음료나 케이크를 사지 않아도 카페에 방문하면 해야 했다. QR 코드가 힘드실 것 같아 명부 작성을 부탁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포스 앞에서 명부를 작성하시고 체온 측정기가 있는 문 앞으로 가셨다. 1분도 채 안 걸리는 일인데 어쩐지 할아버지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셨다. 화면이 꺼지고 나서도 미동도 없이 몇 분동 안 서 계셨다.
"말씀드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가셔도 된다고?"
"저번에도 저러시더라고요. 저러다가 가세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할아버지께서 뒤를 돌아보셨다.
나는 어느새 나를 젖먹이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었다. 티비가 고장 났을 때, 세제를 주문할 때,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병원 가서 접수할 때 이제 내가 없으면 모든 일에 버벅 거리 실만큼 나이가 드셨고 세상 또한 너무 빨리 변했다. 가끔은 이런 상황이 벅차기도 했다.
언젠가 할머니 할아버지 나 셋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 메시지가 왔다. 할머니께서 문자 메시지 내용을 복사해 카카오톡으로 옮겨 보내신 거였다.
"와 할머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그럼. 나도 배우면 다 할 수 있어"
그때 들었던 감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이가 그랬으면 기특하다 하고 칭찬해줄 텐데,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혼자 알아내 하신 게 왜 그렇게 가슴이 아리도록 슬펐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곧 잊어버리실 텐데 하고 알려드릴 생각 조차 안 했다. 사실 귀찮았다. "필요하면 저한테 말해요. 해드릴 테니깐" 하고 말았다. 머리 좀 컸다고 어른인 척하면서 할머니를 그동안 무시해왔단 생각에 그지없이 부끄러워졌다.
카페에선 QR 코드를 무조건 해야 한다. 어르신이 오시면 보통 명부 작성을 권해드리는데 상황이 여유로우면 나중에도 사용하실 수 있게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린다. 본능적으로 나온 예의 바른 행동이면서 한편으로 할머니께 용서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일종의 회개처럼.
나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신기하고 편리하다. 그렇지만 빠른 세상 속에서도 화장실 한편에 아이들을 위한 세면대와 변기를 만들어놓듯이 느린 사람을 위한 배려가 사람 간에도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매장에 곧 키오스크가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키오스크 주문을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처음 내 손으로 지하철 표를 끊어봤던 게 생각났다. 기계에서 툭 하고 나온 표를 개찰구에 밀어 넣고는 다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내 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때 두 분의 표정이 어떠셨을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