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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실 Jan 09. 2021

나를 사랑하는 법

책 리뷰 <데미안>

 난 나를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나를 나를 꺼내 놓고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살았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나에게 어떠한 호기심도 없이 살았다. 그러다 문득 나에 대한 물음표가 떠오를 때마다 혼란스러워졌다. 왜 내가 혼란스러워하는지도 몰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혼자 가만히 앉아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휴학을 결심했다.


 결심과 무색하게 휴학을 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끊임없이 자기소개서를 적으며 인턴에 지원했다. 휴대폰은 항상 인턴 모집 회사들의 글이 올라왔다. 나와 대화하겠다던 나는, 속에서 자기 좀 봐달라 외치는 나 자신을 무시한 채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맞는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았다. 남들도 불평 없이 다 하는 일인데 살면서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인턴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별 관심도 없던 회사였는데 막상 1차에 합격했다고 하니 너무나 가고 싶어 졌다. 회사 근처 카페에 들어가자 사원증을 걸고 커피를 마시는 회사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사원증 없이 누가 봐도 면접복 차림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 문제도 없고 죄도 안 지었는데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모두 나를 보고 동정하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면접 시간을 기다렸다.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그날따라 날씨도 화창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마음속에도 근심거리가 많았을 텐데 내 멋대로 보고 생각해 나 자신을 더 괴롭혔다. 더 깊게 괴롭게 나 자신을 묻어뒀다.


 하지만 내가 모든 고뇌를 끝내게    순간이었다. 면접을 보기 10 전쯤,  사무실에서 나와 같이 면접을 보게  또래 여자와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 너무 떨리네요 하하  웃을게요 죄송해요" 여기가 아니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사시나무 떨듯 떨던  사람을 보고 갑자기 모든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는  같았다. 그렇게 떠는 사람 앞에서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아니 의욕이 없는  모습이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마음속에 깊숙이 묻혀있던  자신이 그때부터 발버둥 치기 시작하다 면접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는  마음을 완전히 장악했다.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달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며칠 동안 아팠다. 죽을 듯이 아파서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낫고  후에 나는 인턴 모집글을  이상 보지 않았고 매일 들락날락하던 취업 카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데미안을 읽은 건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을 알고 싶어서였다. 크면서 내가 느끼고 겪은 감정들을 마치 생생히 내 안에서 보기라도 한 듯 적은 글들을 보며 감탄했고 답을 찾았다는 황홀감과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내가 이상하고 틀린 게 아니란 확신이 들 때마다 행복해졌다. 책을 보고 행복한 건 처음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나 자신을 찾으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 난 그 본능을 여태껏 무시해왔다. 크면서 느끼는 당연한 불안과 혼란이었는데 어리석은 방황을 하면서 쉬운 길을 괜히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혼란스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다. 이런 감정은 살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인 일인 나 자신을 찾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달라는 신호였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그쳤다. 아무도 나한테 그래야만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시발점은 모르겠으나 졸업이 다가오면서 난 취업을 의무라 여기며 살았다. 모든 취업이 문제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게임 스토리를 창작하는 게 재밌는 사람은 졸업을 하고 자연스레 게임 회사에 취직한다. 게임 관련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나 자신과 충분히 대화하는 의무를 먼저 완수한 사람이다. 그다음으로 게임 회사에 취직하는 실천을 한 것이다. 난 의무도 완수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실천해내려고만 애썼다. 무언가 이뤄내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바보 같은 희망이 있었다.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하고만 싶었다. 그래서 누가 뒤에서 나를 다급히 쫓아오는 듯 급하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그게 내 문제였다. 그 후로 나는 어떠한 감정이나 감각, 느낌을 겪으면 꼭 글로 남긴다. 그동안 적은 글 들을 읽으면 내가 누군지 점점 알게 된다. 나를 알아가는 건 굉장히 뿌듯하고 짜릿한 일이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나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지대한 관심을 주고 있다.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데미안은 아직 내 앞에 있다.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거리에서 눈이 부실 듯 광채를 뽐내며 서있다. 데미안은 천천히 나를 깨우치게 해 준다. 언젠가 나는 눈을 감고 있는데도 데미안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오면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평생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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