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매력의 끝은 어디에
감자!
여름이 깊어지니 감자가 지천인 것 같다. 한결같이 투박하고 정겨운 그 모습 그대로 내 시선을 사로잡고, 그런 나는 고민 할 것 없이 결국 한 봉지 사고야 만다. 언제부터 감자를 먹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아주 옛날부터 그 어떤 음식보다도 감자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반소매를 입고 동생과 놀다 보면 엄마가 뜨거운 냄비를 가져와 뚜껑을 열어주셨다. 모락모락 김을 마중하면 이내 그 속에 감춰진 찐 감자가 보였다. 분감자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특히 여름 제철에 나온 감자는 쪘을 때 포슬포슬 부들부들한 무언가가 감자 꼭대기에 묻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기다림 끝에 한입 베어 물면 물기 없는 촉촉함이 입안을 감쌌고 몇 개를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그 맛은 아주 어린 꼬마에게도 일품이었다.
나뭇잎도 다 떨어진 늦가을이었다. 할아버지 댁 사랑방 아궁이가 불을 삼키고 나면, 붉은빛을 안은 숯 더미에 남은 감자 몇 개를 묻어놓곤 했다. 어둑어둑 밤이 되면 아! 감자! 하면서 뛰어나갔다. 할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부지깽이로 저녁에 묻어둔 감자를 찾은 후 아궁이 밖에다 잠시 식혔다. 목장갑을 낀 채, 재를 털고 시꺼먼 껍질을 벗기면 드디어 뽀얀 속살이 나왔다.
시간이 흘러 아이에게도 감자 요리를 많이 해주는데, 그중에서도 찐 감자를 가장 좋아한다. 진정 감자계의 클래식 이리라. 그 어떤 첨가물도 필요 없는 순수 그 자체. 엄마의 방법으로 감자를 깎아 밥물에 몇 개 얹어 취사를 누르면 손쉽게 찐 감자가 완성된다. 밥과 함께 먹으면 감자밥, 감자를 따로 접시에 담으면 그 자체로도 몇 번의 간식이 된다.
내가 자라던 동네에는 감자가 많아서 여름에는 흔하게 구할 수 있었다. 찐 감자와 더불어 양대 산맥이었던 감자전도 참으로 많이 먹었다. 조금 큼직한 감자를 골라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다 감자를 간다. 대체 무엇을 위해 내가 팔 힘을 쓰고 있나 싶도록, 팔뚝이 절로 두꺼워지도록 감자를 갈아 버린다. 그새 생긴 물을 따라내 애호박, 풋고추 따위를 썰어서 넣고, 전분을 살짝 섞어 달궈진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부친다. 가장자리는 바삭해지고 안쪽은 쫀득한 식감! 더는 설명 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음식에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소나기 내리는 여름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감자전 정말 좋아하지만, 진짜 좋지만 가끔 강판을 갈 힘이 없는 날이면 얇게 채를 썰어 본다. 채 썬 감자를 찬물에 담가 전분기를 제거하고 그 위에 부침 가루를 조금 섞어 기름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높은 온도로 익힌다. 내가 처음 감자튀김을 먹은 그 날처럼 아기도 감자에게 놀라운 맛을 느낀 모양이었다. 가끔 슬라이스 치즈를 잘라서 함께 섞어 익혔다. 바깥이 땡볕이라 나가지도 못하는 더운 날, 기분 좋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만든 간식을 맛나게도 먹었다.
감자야
나는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가며 너를 맛있게 먹을 궁리를 하는데 너는 한결같은 맛으로 여름을 기다리게 하는구나. 감자 너는 정말 변하지 않는가 보다. 그 순박함 때문에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너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결같은 맛에 취한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더운 여름날 널 익히려고 불 앞에 서 본다. 이렇게 올여름도 너와 함께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