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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Jun 18. 2020

물만밥에 담은 것

이 그릇이 흑백사진이 되어도 이어가고 싶은

입맛이 없다. 무거운 냉장고는 비어 가고, 밥솥에는 한 주걱 밥만이 온기를 잃고 있다. 밥맛도 없겠다. 라면을 끓여볼까. 불을 쓰자니 더위에 더할 화기가 겁난다. 한 끼 굶는 것도 썩 괜찮겠다는 생각에 발을 돌리는데, 불현듯 떠오른다. 저 한 주걱 식은 밥에 시원한 물을 부어 후르르 먹어도 괜찮겠다. 며칠 전 사놓은 오이지를 휘리리 무쳐서 같이 먹으면 딱이겠다. 통 오이지를 얇게 썰어 물에 잠시 담갔다가 물기를 꼭 짠다. 고춧가루, 매실청, 설탕, 다진 마늘, 다진 파, 참기름을 넣어 골고루 무치고 통깨를 솔솔 뿌린다.


자, 먹어볼까. 오목한 숟가락으로 한술 떴다. 식어서 하나로 똘똘 뭉친 흰밥 무리를 시원한 보리차가 에워싼다. 그 덕에 술술 넘어가려 하지만 건강을 위해 의식적으로 씹어본다. 꾹꾹 눌리며 가득 퍼지는, 달달하고도 하얀 맛에 집중하면 옛이야기가 절로 떠오른다.




평안도 연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그곳에서 신혼을 시작하셨다. 겨울에 콩을 삶아 따뜻한 방에서 발효를 시켜 청국장 같은 진이 나올 무렵, 이를 절구에 넣어 빻으셨단다. 너무 곱지 않게, 어느 정도 콩의 식감을 살리도록 찧어 반죽이 되면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파로 양념을 하고 떡갈비처럼 빚으셨단다. 구멍 송송 뚫린 석쇠에 빚은 반죽을 자리하고 빨간빛을 살포시 덮은 재를 담은 화로 위에 올려 노릇노릇 구우셨는데, 이북에서 즐기던 이 음식을 외할아버지께서는 물만밥과 함께 드셨단다. 옛날 얘기처럼 말로만 들었던 음식을 오늘 내가 만든 오이지와 곁들여 본다.



작년 가을,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얼마 후 김장철이 왔다. 엄마는 김장 홀로서기를 해내셨다.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씩씩함을 가장한 허전함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김장김치를 묵묵히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침묵이 어색해 깨버리고 싶었다. 어쩜 이렇게 김치가 잘 되었냐고. 배추도 간도 딱이라고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급기야 밥에 물을 말아서 함께 먹자 청했다. 단백질도 없는 김치뿐인 반찬을 두고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이제 깻잎지도 못 먹겠네.”


맞다. 자주 만들어 주신 외할머니의 음식이 있었다.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는 계절에 외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 황금빛 들녘을 배경으로 소일거리를 하고 계신 할머니의 웃음이 아직도 선하다. 댁 앞에 도착하면 시멘트 바닥 위 돗자리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빨간 고추나 작은 나무토막 같은 무가 볕과 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바깥일을 마치신 할머니는 냉장고를 열어 깻잎지를 내주셨다. 밭에서 직접 따신 아기 손바닥만 한 깻잎 한 장 한 장에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으로 만든 양념을 펼쳐 발라 수십 장을 포개 만드신 반찬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초록은 갈색이 되며 무르익는다. 깻잎을 증기에 살짝 쪄서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으로 만든 방법이 더 좋았다.  엄마의 엄마, 그분의 빈자리는 내게도 커다랗다. 손녀 냉장고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할머니의 유작, 깻잎지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다.




오늘 식탁에는 물에 만 밥그릇을 중심으로 외할아버지의 콩반죽구이와 외할머니의 깻잎지를 올려본다. 엄마가 되니 자꾸 찾는 오이지도 갓 무쳐 함께하니 혼자라도 외롭지가 않을 것 같다. 숟가락을 뜰 때마다 밥그릇에 담은 기억을 다시 꼭꼭 씹어본다. 어쩌면, 그 이야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 물만밥이 떠오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짭조름한 반찬이 어우러져 곧 물배가 찰 것이다. 알고 있지만 자꾸 먹고 싶은 이 음식과 함께하는 시간에 흠뻑 젖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툭툭 친다.



"엄마, 나도 밥에 물 말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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