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가 익어가는 우리 집
어떤 저녁이었다. 아이와 놀이터를 다녀와 현관문을 열려는 찰나 아주 먹음직스러운 닭백숙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이것은 분명 배달이나 포장이 아닌 집에서 준비한, 손수 몇 시간을 고아 만든 정성(이라 불리는 음식)에서 풍겨오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덕에 내 머릿속에는 백숙이 맴맴 돌았는데, 허기가 질 무렵이기도 하거니와 며칠간 돌려 막은 소와 돼지고기, 생선을 벗어나 오늘의 식탁에 닭고기가 올라올 무렵이 된 것 같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식당으로 달려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깥에서 파는 백숙을 먹자니 어딘가 아쉬운 기분이 들어 이 음식을 먹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마트에 갔었다. 평소 쳐다보지 않던 삼계용 닭에 눈길이 섰다. 바로 냄비에 넣어도 될 것 같은 상태로 포장된 생닭이 눈에 띄었다. 그 아래에는 역시 이 한 봉만 넣어 끓이면 된다는 느낌의 삼계용 약재도 바로 구매하도록 진열해놓았다. 주부가 된 지 만 4년이 지났지만 날 것 상태의 생닭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토막 고기나 닭 안심살 같은 특수 부위만 찾았다. 며칠간 묻고 또 물은 엄마의 요리법대로라면 닭과 부수 재료를 냄비에 넣고 그냥 끓이면 되는 세상 쉬운 보양식인데, 난 여전히 망설였다. 우리 집에 닭 두 마리를 끓일 냄비가 있나? 이거 열심히 끓였는데 맛없으면 처치 곤란이잖아? 이런 질문은 모두 사치였고 솔직히 나는 생닭을 만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렇게 빈손으로 마트를 떠나며 또다시 백숙은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백숙을 미룰 수 없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가족의 체력이 떨어지고 그 바람에 아이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필시 복날을 그냥 넘겼기에 몸이 허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갑자기 보양식을 만들겠다는 용기가 폐부에서 샘솟았다. 마트로 달려가 생닭 두 마리와 그 옆에 진열된 약재를 사 오고 오늘 저녁에는 보양식을 준비할 예정이니 기대하라는 둥 남편에게 예고를 날려 생애 첫 백숙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큰 냄비에 물을 받아 나뭇가지 같은 약재를 쏟아 넣고 끓였다. 물이 끓으면서 무슨 풀 냄새가 나고 색깔은 갈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생닭을 마주했다. 모두 손질이 되어서 흐르는 물에 씻어 기름기가 많은 꽁지를 가위로 잘라 내는데, 이 자체가 도전이었다. 옛날 외갓집에서 생닭을 잡으시는 할머니의 여전사 같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나면서 동시에 어쩌면 할머니도 새댁 시절에는 닭을 만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동 재생되었다. 닭의 뱃속에 불려놓은 찹쌀과 미리 준비해놓은 통마늘을 차곡차곡 넣고 닭다리를 꼬아 봤다. 직감적으로 쌀이 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이쑤시개로 여러 차례 봉합해 배가 불룩한 날 닭 두 마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냄비에 끓었던 약재를 걷어내고 닭 두 마리를 넣었다. 뚜껑을 닫고 부디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며 불을 세게 켰다. 그 사이 겉절이를 만들기 위해 알배추를 다듬고 양념을 만들어 쓱쓱 무쳐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삼계탕집 연출을 위한 아삭이 고추와 생양파도 다듬고, 쪽파도 송송 썰고 소금장도 미리 만들었다. 냄비가 다시 끓자 익숙한 냄새가 서서히 흘러나왔다. 아, 맞아! 이거였지. 40분이 지나자 닭이 하얀색이 되어 젓가락을 찔러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관통해 생닭이 백숙이 되었음을 알렸다.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고 국자로 국물도 끼얹어 그 위에 생파를 솔솔 뿌렸다. 퇴근한 남편과 오늘도 열심히 자란 아이에게 나의 첫 백숙을 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닭다리를 뜯어보니 푹 익었는지 쉽게 분리되었다. 살코기를 한 점은 내가 알던 그 맛이 맞음을 확인해주었다. 과연 잘 익을지 계속 궁금했던 찹쌀도 쫀득하니 나무랄 데가 없다. 슴슴한 국물 한 숟가락은 영양을 담은 것 같았다. 살코기를 모아 아이에게, 서로에게 몰아주면서 우리 세 식구는 백숙이 담긴 그릇을 비웠다.
내 생애 첫 백숙이었다. 새댁 시절부터 도전하고 싶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맛집을 찾아 몸보신을 했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직접 요리하고 싶었다. 백숙을 만들어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닭고기가 익어가는 집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백숙 내음이 퍼져나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