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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ug 13. 2020

아기를 향한 당신의 배려

priceless

엄마가 되니 배려받는 일이 많이 생겨요. 배 속에 아기를 품었을 때부터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비워주신 분들 덕에 아기와 함께 편안하게 외출했어요. 처음 받아본 자리 양보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부터 마음에 감사함이 동그랗게 채워졌네요. 요즘은 유아차를 이용해 외출을 자주 해요. 복잡한 지하철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시는 분,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어 바퀴가 빠질까 함께 들어주시는 분, 승강기 열림 버튼을 눌러 저희 모녀가 먼저 타고 내리도록 기다려주시는 분들 모두 처음 본 사이인데도 어쩜 그렇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는 걸까요.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와 외출했는데요. 햄버거 가게와 마트, 은행에 들어갈 때마다 문을 잡고 기다려주신 분들 덕분에 무거운 문을 아기와 함께 쉽게 지났갔네요. 게다가 환한 웃음과 반가운 인사까지 더해주시더군요. 유아차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고 약속했어요. 아이와의 외출은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는데 이런 마음을 받으면 뭉클함이 번지며 하루를 이겨내는 힘을 얻어요. 별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서로의 눈인사를 교환하며 오늘의 기쁨을 함께 저장한 날이 될 거예요.



어쩌면 이런 마음은 물질적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가가 아닐까 싶어요. 재화는 한계가 없는 속성 때문인지 더해질수록 그 이상을 원하게 되는데요. 배려가 주는 행복은 마음에 꽉 차게 들어와 그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단어인 'priceless'가 떠올라요. 이런 행복, 감사야말로 진정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 믿거든요.  



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온기가 서려 있어요. 특히, 어르신일수록 아기에게 눈을 떼지 못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네요. 지나가면서 당신들의 손주가 떠오른다는 분들, 자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는 분들, 그냥 바라만 봐도 너무 예쁘다고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들 모두 그 시선에는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고귀한 시선이 머무릅니다. 아마도 저마다의 사연을 담아 오늘의 인연에 닿은 것이겠지요. 삶의 여러 조각이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지나가는 아기에게 잠시 머물러 그 시절 행복을 떠올리는 순간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친정에서 아이가 갑작스러운 고열로 몹시 아팠던 적이 있어요. 새벽 2시 응급실로 향하는 길에 울음이 멈추지 않아 밤중에 소란을 피웠답니다. 평소 교류하던 옆집 할머니께서 나와 보실 정도로 야단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찾아오시더군요. 죄송한 마음이 들어 어젯밤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의 두서없고 장황한 말이 끝나자 할머니께서는 “혼자 살아 적적한데 오랜만에 아기 소리가 나서 좋았어요. 아기 키우면서 열날 때가 가장 무섭죠. 이거 아기 줘요.”라며 간식을 건네주셨어요. 그 순간 저는 마음에 씨앗을 심었어요. 훗날 이렇게 이해하고 말하는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요.



아마도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이런 배려로 한 뼘씩 더 자랐을지도 몰라요.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 그분들의 조상들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아이는 계속 태어났을 것이고 지금껏 이어지니까요. 저희 모녀가 받는 일상의 배려는 우리 모두의 시작이 사랑이었음을 알려주는 단서 일지도요. 아기를 위하는 마음이 여러 세대와 타인의 경계를 초월하며 수없이 닿기에 인류의 역사가 지금껏 이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요. 



알면 알수록 세상은 팍팍하더군요. 저도 볼멘소리로 불평불만만 잔뜩 늘어놓으며 욕심을 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난 분들이 전하시는 아기를 향한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어린 시절 우리도 이렇게 존중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라요. 아기를 향한 당신의 배려, 그 거룩한 마음으로 아이들은 세상이라는 여행에 한 발짝씩 내딛는 힘을 얻어요. 그리고 저도 다짐하게 되네요. 앞으로 만나게 될 아기들에게 사랑과 존중을 담은 마음을 전할 것이라고요. 이렇게라도 당신께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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