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에 담은 그때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큰마음먹고 계획한 아기와의 외출은 익숙한 곳도 낯선 장소로 변하는 날이었다. 터질 듯 채운 기저귀 가방과 커다란 유모차를 끌면서 사방을 주시했다. 아기가 언제 울지 몰라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오랜만의 외출을 소심하게 즐겼다. 수유실에서 잠시 쉬거나 챙겨 온 이유식을 먹일 때도 돌발 상황이 벌어질까봐 긴장의 끈이 팽팽했다. 바로 이때, 선배 엄마들의 사랑이 담긴 시선과 상냥한 말이 그렇게 반가웠다.
“아기 너무 귀여워요. 몇 개월 됐어요? 11개월쯤 되었나?”
엄마들은 도사다. 아기의 월령을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맞히는지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고생이 많다고, 금방 큰다는 덕담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곤 했다. 시간이 흘러 커다란 유모차가 휴대용으로 바뀌고 짐도 가벼워지면서 아기와의 외출도 능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화센터 수업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몹시 짙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점차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로 시선을 따라갔다. 순간 어떤 어르신이 뒷짐을 지고 인자한 모습으로, 또 조심스러운 자세로 우리 아기를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그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경계의 눈빛은 안심으로 변했다. 그러자 어르신은 아기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아예 대놓고 살펴보셨다.
“우리 손주와 너무 비슷해서 계속 쳐다봤어요. 아기 몇 개월이에요?”
“22개월이에요. 곧 두 돌이에요.”
“우리 손주랑 똑같네요. 친구네요”
“아, 그러세요? 저희 아기는 작년 2월에 태어났어요”
“우리 손주는 2월 6일이 생일이에요”
“네? 생일이 똑같은데요?”
할아버지의 마음은 온통 손주 생각으로 가득하셨음이 틀림없다. 우리 아기가 당신의 손주와 비슷하다는 느낌은 매우 강력한 이끌림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시선을 떼지 못하셨던 것이다. 어느새 도착한 지하철에 앉아 같은 날 태어났다는 인연만으로도 잊지 못할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정확한 생시, 태어난 병원도 바로 기억하시는 할아버지는 먼저 내리실 때까지 우리 아기를 쳐다보고 계셨다. 분명, 우리 아이를 보며 손주 생각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어떤 기분일까. 도대체, 이 사랑은 어떤 느낌일까.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도 할아버지의 눈빛이 남아 있었다. 손주로 가득한 마음, 다른 아이를 보면서도 느껴지던 사랑과 우리 아기에게도 전해진 따뜻한 마음. 나에게도 그 할아버지가 계속 기억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있었다.
아기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무르익는 건가.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들에 눈이 가고 재잘재잘 초등학생들이 귀엽고 교복 입은 학생들도 예뻐 보인다. 언젠가 우리 아기도 저렇게 크겠지, 어떻게 자랄까 즐거운 상상도 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보인다.
“18개월쯤 됐어요?”
어린 아기를 보면 나도 월령쯤은 얼추 맞힌다. 초보 시절, 참 신기했던 엄마 도사의 비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아기를 자세히 쳐다보면 그 얼굴과 행동에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인다. 갈수록 아이의 솜털 같은 시절이 가물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과 마음으로 담은 그 시절 우리 아기의 모습이 그때와 똑같은 시기를 지나는 오늘 내가 만난 아기에게 보인다. 동영상보다 더 생생하게.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다시는 못 볼 그 모습이 그리워서. 너무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는 핑계로 예쁜 모습을 더 담지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다시 보고 싶어서.
그렇게 나는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