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12월 1일도, 호빵도, 첫눈도 아닌 딸기다. 어릴 적 딸기의 제철은 봄인 줄만 알았는데, 내가 점차 커질수록 겨울부터 알이 굵고 색깔이 예쁜 딸기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때 먹는 딸기는 치킨 한 마리, 혹은 반 마리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두 해 전 초겨울이었다. 유아차를 밀고 어딘가를 다녀오던 저녁 길, 집 앞 과일가게에서 유난히 탐스러운 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 팔리고 유일하게 남은 한 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 딸기를 씻어 꽃잎을 뗀 후 아기가 먹기 좋게 잘게 잘라 접시에 담았다. 아직 말을 못 하던 22개월 우리 아기는 본능적으로 딸기 향에 취했고 그 자리에서 한 팩을 모두 먹어버렸다. 그런데도 성에 차지 않는지 빈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엄마, 딸기 더 줘요.’
“아까 사 온 딸기 다 먹었어. 나중에 또 사줄게.”
내 말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인지 아기는 갑자기 냉장고 문을 휙 열더니 과일 칸을 드르륵 열고, 까만 봉지를 뒤적거렸다.
‘당장 딸기를 내놓으시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분명 말은 못 하는데! 소란스러움이 들렸다. 그 모습이 황당하기도 하고 자못 우스워서 한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딸기가 그렇게 맛있을 것이다. 우리 아기는 과일을 많이 좋아해서 딸기도 잘 먹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딸기와 아기, 그들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렇게 나는 겨울만 되면 다른 간식값을 아껴 딸기를 사다 나르게 되었다.
딸기값은 한 주가 지날수록 달라진다. 매주 딸기를 사다 보니 겨울이 깊어지고 새봄을 맞이하면서 딸기값이 차츰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원 한 장으로 딸기 세 팩을 얻는 날에는 횡재한 기분이다. 오늘 과일 접시를 가득 메울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부푼다. 딸기 부자가 된 느낌인 걸까.
내가 딸기를 씻으려 준비하면 빨리 먹고 싶어서인지 아기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에게 딸기를 건넨다. 고사리 두 손에 가득 담긴 딸기 두 개. 딸기가 원래 이렇게 귀엽게 생겼나? 딸기를 들고 있는 그 모습은 몹시도 어여쁘다. 딸기로 충만한 하루를 마치면, 어느새 아기는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한다. 볼록한 배가 평화롭게 움직이며 새근새근 잘도 잔다.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뽀뽀를 해보면 달콤한 딸기향이 아기 근처를 맴맴 돈다. 그 향은 몹시도 사랑스럽다.
우리 아기의 네 번째 겨울에도 어김없이 딸기가 찾아왔다. 몇 번이나 비교 끝에 골라온 오늘의 딸기를 씻고 떼고 자르다 보니 2년 전 딸기를 처음 먹던 너의 모습이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이제는 자기 주먹만 한 딸기도 알아서 잘 먹고 “우와 이거 옴총 맛있다!!!”라고 마음을 표현하는 꼬마가 되었다. 그 모습도 꼭꼭 담아보며.
먼 훗날에도 겨울 길목에 만난 딸기를 볼 때면 너의 두 살 모습이 내 앞에 문득 나타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