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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Sep 06. 2021

들기름 예찬

[뜰끼름]의 여행

나 어릴 적 들기름은 [뜰끼름]이라 듣고 나도 [뜰끼름]이라 부르며 자랐는데, 내가 결혼을 하니까 주위 분들은 [들기름]이라 칭하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들기름을 일컬을 때 어떤 날은 [뜰끼름]이라 하기도, 또 어떤 때는 [들기름]이라 말하게 되었다.



어린 나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뜰끼름]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날마다 반찬을 만드셨는데, 갖은 채소를 볶으면서 비슷한 시점에 [뜰끼름]을 한 바퀴 두르셨다. 심지어 계란후라이도 [뜰끼름]으로 부치셨다. 이유는 단 하나. [뜰끼름]을 넣으면 더 맛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부엌에서 먼저 지글지글 소리가 들리면 곧이어 [뜰끼름]의 향연이 퍼졌다. 내 방에서 놀던 그때, 소리와 내음이 여전히 기억으로 선명하다. 허나, 어린 나는 매일 [뜰끼름]으로 볶은 반찬을 먹어 들기름이 지천인 줄 알았으니,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높았던 참기름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나는 [뜰끼름] 아닌 [들기름]으로 말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내가 반찬을 만들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료 손질부터 조리 방식과 보관까지 어느 하나 손이  가는  없다.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은 효율을 따졌을  이득이 없기에 나는 반찬은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대신 하나의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날이 많다. 여기서 잠깐! 그럼 우리  냉장고에 고이 모신 들기름은 쩌냐 묻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바꾼 들기름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들기름 예찬도 빼먹지 않는다.



참기름이 발랄하다면 들기름은 점잖달까.



참기름의 향이 바로 발산하는 매력이 있다면, 들기름은 그윽하게  몸속으로 번진다. 들기름  숟가락만으로도  점잖은 향에 심취할  있고 참기름과는 달리  많이 넣어도 질리지 않아서  들기름이  좋다.


<들기름 소면>
소면을 삶아 접시에 담고, 신선한 달걀노른자 하나 조심스레 올리고, 그 위에 들기름을 한 바퀴 돌리고 깨끗한 소금을 살짝 뿌려 휘휘 비벼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으면 미소처럼 웃음이 절로 절로   
<들기름 달걀밥>
따끈한 밥 위에 달걀프라이 얹고 간장 한 숟갈, 들기름도 한 숟갈 넣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장아찌 한 젓가락씩 얹어 먹으면 참기름 생각은 저기 멀리멀리    
<들기름 볶음고추장 비빔밥>
우리 아버님께서 만들어주시는 한우 마카다미아 볶음고추장을 밥 위에 한 숟갈 크게 떠서 넣고 그 위에 들기름을 한 바퀴 두 바퀴 휘휘 돌려 슥슥 비비면 김치도 장아찌도 필요 없는 한 그릇 요리가 되어 고추장과 들기름을 주신 양가 부모님들께 감사 감사


들깨는 저 멀리 시골 흙에서 햇살, 바람, 빗물을 먹고 자란다.

다 큰 들깨는 탈탈 털리고 씻기고 말려 시장통 방앗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들깨 주인의 감시 하에 들기름으로 변해 유리병에 담긴다.

기름병들끼리 부딪쳐 달그락거리며 또 어디론가 향한다.


깨질까 봐 난리법석 소란함이 여러 번 끝나면

드디어 서울 사는 딸 집에 도착한다.


마개 속 마개를 따고 코를 가까이 대야 비로소 맡아지는 그윽한 향,

이윽고 뒤따르는 오메가 3, 상할라 빨리 먹어라.



이렇게 찾아온 나의 [뜰끼름]은 한 그릇 요리로 변신하고

그때마다 나는 [뜰끼름] 생각과 향에 취하고

들기름을 핑계 삼아 엄마 생각을 마음껏 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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