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끼름]의 여행
나 어릴 적 들기름은 [뜰끼름]이라 듣고 나도 [뜰끼름]이라 부르며 자랐는데, 내가 결혼을 하니까 주위 분들은 [들기름]이라 칭하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들기름을 일컬을 때 어떤 날은 [뜰끼름]이라 하기도, 또 어떤 때는 [들기름]이라 말하게 되었다.
어린 나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뜰끼름]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날마다 반찬을 만드셨는데, 갖은 채소를 볶으면서 비슷한 시점에 [뜰끼름]을 한 바퀴 두르셨다. 심지어 계란후라이도 [뜰끼름]으로 부치셨다. 이유는 단 하나. [뜰끼름]을 넣으면 더 맛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부엌에서 먼저 지글지글 소리가 들리면 곧이어 [뜰끼름]의 향연이 퍼졌다. 내 방에서 놀던 그때, 소리와 내음이 여전히 기억으로 선명하다. 허나, 어린 나는 매일 [뜰끼름]으로 볶은 반찬을 먹어 들기름이 지천인 줄 알았으니, 상대적으로 희소성이 높았던 참기름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된 나는 [뜰끼름]이 아닌 [들기름]으로 말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고백하건대 내가 반찬을 만들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료 손질부터 조리 방식과 보관까지 어느 하나 손이 덜 가는 게 없다.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은 효율을 따졌을 때 이득이 없기에 나는 반찬은 안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대신 하나의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날이 많다. 여기서 잠깐! 그럼 우리 집 냉장고에 고이 모신 들기름은 어쩌냐 묻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바꾼 들기름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들기름 예찬도 빼먹지 않는다.
참기름이 발랄하다면 들기름은 점잖달까.
참기름의 향이 바로 발산하는 매력이 있다면, 들기름은 그윽하게 내 몸속으로 번진다. 들기름 한 숟가락만으로도 그 점잖은 향에 심취할 수 있고 참기름과는 달리 더 많이 넣어도 질리지 않아서 난 들기름이 참 좋다.
<들기름 소면>
소면을 삶아 접시에 담고, 신선한 달걀노른자 하나 조심스레 올리고, 그 위에 들기름을 한 바퀴 돌리고 깨끗한 소금을 살짝 뿌려 휘휘 비벼 잘 익은 김치와 함께 먹으면 미소처럼 웃음이 절로 절로
<들기름 달걀밥>
따끈한 밥 위에 달걀프라이 얹고 간장 한 숟갈, 들기름도 한 숟갈 넣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장아찌 한 젓가락씩 얹어 먹으면 참기름 생각은 저기 멀리멀리
<들기름 볶음고추장 비빔밥>
우리 아버님께서 만들어주시는 한우 마카다미아 볶음고추장을 밥 위에 한 숟갈 크게 떠서 넣고 그 위에 들기름을 한 바퀴 두 바퀴 휘휘 돌려 슥슥 비비면 김치도 장아찌도 필요 없는 한 그릇 요리가 되어 고추장과 들기름을 주신 양가 부모님들께 감사 감사
들깨는 저 멀리 시골 흙에서 햇살, 바람, 빗물을 먹고 자란다.
다 큰 들깨는 탈탈 털리고 씻기고 말려 시장통 방앗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들깨 주인의 감시 하에 들기름으로 변해 유리병에 담긴다.
기름병들끼리 부딪쳐 달그락거리며 또 어디론가 향한다.
깨질까 봐 난리법석 소란함이 여러 번 끝나면
드디어 서울 사는 딸 집에 도착한다.
마개 속 마개를 따고 코를 가까이 대야 비로소 맡아지는 그윽한 향,
이윽고 뒤따르는 오메가 3, 상할라 빨리 먹어라.
이렇게 찾아온 나의 [뜰끼름]은 한 그릇 요리로 변신하고
그때마다 나는 [뜰끼름] 생각과 향에 취하고
들기름을 핑계 삼아 엄마 생각을 마음껏 해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