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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Nov 24. 2020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할 때면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할 때면 손끝에 절로 마음이 모인다. 그 마음은 음식의 주인공을 향한 정성(精誠)이라 여기고 싶다. 요리를 해보니 알겠다. 내 앞에 놓인 이 음식이 어떤 마음으로 담은 것인지를. 가끔은 정성인지 아닌지가 몹시 격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한 요리를 할 때는 음식의 주인공과 목적을 떠올리며 취향을 고려한 식단부터 짠다. 보통 서너 가지를 골라 내가 여러 번 해본 음식으로 선택한다. 아울러, 손님을 집으로 초대를 할 것인지 혹은 용기에 담아 전달할 것인지를 생각해 음식을 최대한 안전하게 내보일 방법까지 염두에 둔다.



식단이 완성되면 을 본다. 새벽 배송과 로켓 배송 덕에 몇 번의 클릭으로 쉽게 결제가 되는 세상이지만, 이때만큼은 깐깐한 소비자 모드로 변한다. 평소 같으면 굳이 따지지 않을 신선도, 육류의 등급, 채소와 색깔 등을 여러 차례 비교하게 된다. 아니다 싶으면 집 근처 시장으로 뛰어가던가 멀리 위치한 마트까지도 달려본다. 그렇게 준비한 장바구니를 하나씩 풀어 조리대와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하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위한 몸풀기를 시작한다.



요리 과정 중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계는 대개 재료 손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향한 요리는 세 식구 한 끼 분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만들기에 재료가 많다. 채소 손질부터 씻고 적당한 크기로 썰며 요리별로 모아놓다 보면 어느새 주방은 요리 준비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된다. 흙이 없도록, 시든 부위가 없도록, 모양이 가지런하도록 신경을 쓰기에 평소보다 더욱 재료의 모습이 예뻐 보이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재료가 모두 준비되면 요리별로 어떤 프라이팬, 혹은 냄비를 쓸 것인지, 불을 쓰지 않을 것인지도 고려해 나만의 요리 순서를 정리한다. 보통, 오랜 시간이 걸릴 국 종류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먼저 시작한다. 그 옆에서 전을 부치고 익히는 동안 무침용 양념을 미리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 버무리며 최적의 요리를 위한 시나리오를 이행하게 된다. 요리를 하면서 몇 번이나 망설이게 된다.  '이 재료가 너무 적거나 많아서 요리의 균형이 깨지지 않을까, 간이 짜면 어떡하나, 아니면 너무 심심해서 맛을 못 느끼면 어쩌나, 고기가 신선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열심히 부친 전이 못 생기면 어쩌나. 오늘은 왠지 면이 퉁퉁 분 것 같다.' 등등 온갖 요리 걱정이 샘솟으며 자주 간을 본 덕분에 미각이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다.



몇 번의 호들갑을 끝에 요리가 완성될수록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식을 권한다.

"조금 싱거운 것 같아. 소금을 더 칠까? 그래도 짠 것보다는 낫지?"

간 보는 사람의 판단을 흩트리는 철벽 방어 끝에 비로소 안심의 답변을 들으면 요리가 끝난다. 접시나 반찬 용기에 조심스럽게 음식을 담은 후 주인공에게 음식을 건넨다. 식사 내내 부디 음식이 입맛에 맞기를 바란다.




며칠 전 아버님의 생신 모임이 있었다. 매번 외식(코로나 시대에는 배달 음식)으로 가족 식사를 하지만 좋아하시는 호박전과 잡채를 준비하고 싶었다. 여기에 미역국과 다른 전 하나를 추가해 아버님께 전달해드렸다. 생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어김없이 음식을 싸 주셨다. 이번 음식은 아버님께서 직접 담그신 동치미, 그리고 어머니께서 만드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남편과 아기가 좋아하는 식혜까지 어김없이 챙겨주셨다. 아이스박스를 채우며 입덧이 나아졌냐고 물으시는 말씀에 이 반찬에 담겼을 같은 마음을 생각하니, 그저 이 요리가 모두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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