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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Apr 10. 2020

신부 입장곡

봄바람 by 버스커 버스커

며칠을 벼르던 일을 시도하는 날이다. 오늘 새벽 5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키지 않게 집을 나가려고 조심스럽게 준비를 했다. 어둠 속 소리 없는 분주함은 장난감 자동차를 밟으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뻔했지만 어서 신발을 신고 집을 탈출했다. 오전 다섯 시 반. 어슴푸레 새벽빛에 꽤 익숙해졌다. 새벽하늘이 밝아지기 전에 오늘의 미션을 완료해야 했다. 크게 숨을 쉬어 한숨 돌려보았다. 어제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4월의 공기가 그해 오늘의 마음을 실어다 주었다. 묘한 감정이 샘솟았다. 잊고 있던 그 날의 새벽이 떠올랐다.



익숙한 동네를 서둘러 걸으며 새벽 풍경을 눈에 담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편의점에 들어가 술 한 병을 고르고 가방 깊숙이 넣었다. 계산을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하니 어느덧 큰길에 도착했다.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가 보였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차를 보니 4년 전 오늘 커다란 짐을 양손에 들고 목적지에 도착한 내 마음이 떠올랐다. 내가 먼저 도착했고 누군가를 기다렸었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날 울려 퍼진 노래를 만든 가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도 이어지다니. 상념에 잠긴 채 기다리다가 오늘의 목표물을 챙겨 밖에 나오니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해 오늘 새벽. 우리의 결혼식날 새벽이었다. 나에게 곧 기다리던 누군가가 왔고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빈속에 커피를 마신 것처럼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점차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에 어색해했으며 바로 며칠 전까지도 중요한 일을 마치느라 몸이 무거워졌다는 투정을 하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간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 변신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었다. 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입은 옷은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15cm의 하이퍼 킬 힐을 신고 나는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마법에 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오늘 이 시간쯤 우리 둘도 그곳에서 나왔다. 차가 쌩쌩 움직이는 서울의 한 복판. 건물이 즐비한 곳에서 나는 하얀 옷을 입고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나를 챙기기 바빴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우리는 모두가 모일 또 다른 장소로 함께 움직였다. 차가 밀릴까 봐 걱정이었다. 오늘이 어떻게 잘 진행될지 떨렸다. 갑자기 모든 게 불안했다. 빠뜨린 것은 없는지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기에 다행히 차가 밀리지 않았고 우리는 여유롭게 도착해서 차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평온했던 그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지는 4월 10일 우리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집에 들어가는 길, 나무에 반쯤 남아있는 벚꽃과 새벽 공기가 몇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설렘으로 온몸을 진동하게 해 주었다. 아까 만났던 가수가 만든 노래는 나의 입장곡이었다. 내가 오늘 준비한 미션은 신혼여행을 떠올릴 조식 구매였다. 새벽을 사랑하니 가능하게 된 맥모닝을 4년 전 오늘을 기념하며 함께 먹고 싶었다. 그보다 훨씬 전 만화방 데이트하면서 먹은 시애틀 커피와 맥너겟 한 조각은 소박하고 커다란 행복이었다. 데이트와 신혼여행을 함께 떠올릴 M사의 조식을 들고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었다. 혹시 아기가 깨서 울지 않았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집은 조용했다.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열어보니 부녀가 잘 자고 있었다. 준비한 맥모닝을 식탁에 올려놓고 그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잠깐 사이에 날이 더 밝았다. 새벽의 조용함은 사라지고 하루가 분주하게 시작하는 아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찰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떨리는 마음으로 음 이탈까지 불사하며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이 남자가 소리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하얗게 웃었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맥모닝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우리 오늘 뭐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h6EGDoW6p1k


* 봄바람 휘날리면 팝콘같던 벚꽃잎이 눈꽃처럼 내려 

flower shower를 하는 듯

우리 함께 시작한 계절을 떠올리며

선율만으로도 벅차

내 마음은 구름 위로 올라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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