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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May 15. 2020

클래식, 그 아름다운 진면목

108일 글쓰기 <심미안 수업> 거듭 부활하는 아름다움, 클래식

즐거운 층간 음악이 있는 집에 산다. 옆집은 바이올린 레슨을 하는 집인데 매일 오전 일정한 시간이 되면 고귀한 선율이 차츰 고개를 든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는 것 같은 음색을 듣고 있으면 절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허나, 이 소리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진짜 소음으로 다가왔다. 벽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아기의 낮잠과 맞닿으면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선율이 낮잠에 방해될까 걱정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더 많은 바이올린 소리가 함께 울려 퍼져도 아기는 잘 잤고 나도 어느새 그 음악에 심취해 박수 소리까지 예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 위층은 피아노 대가가 계심이 틀림없다. 아기 방에 있다 보면 천장을 뚫고 숨죽여 들려오는 해일 같은 피아노 연주에 나도 몰래 빠져있다. 과연 저분은 어떤 곡을 연주하는 것일까, 얼마나 연습하면 저런 실력이 나올까, 아예 직접 보고 싶다는 둥, 층간소음을 잊게 한 그분의 연주를 엿들으며 별생각을 다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음악을 동경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참지 못하고 우리 집에 있는 피아노를 켜서 딩동댕동 두드려본다. 그때는 참 하기 싫기도 했는데, 이제는 다 잊었겠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기억으로 아기가 좋아하는 동요를 걸음마처럼 연주해본다. 그 시간이 참 좋다.  




이렇게 음악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데 음악이 재연의 예술이라는 말은 그간 나의 태도를 바꿔놓았다. 특히, 듣고는 있지만 딱히 큰 관심이 없던 클래식은 오늘 필사한 글로써 나에게 새 지평을 열어두었을 것이다. 클래식을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압박에 접하다 보니 무지에서 느껴지는 지루함에 절로 흥미가 떨어진 경험이 많다. 물론, 어떤 특별한 경험이 덧댄 곡들은 상황에 따라 직접 찾아 듣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클래식 마니아가 아니었던 나에게 클래식이 과거의 음악 유산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연주를 비교, 반복하여 즐기는 것이라니, 심지어 현대사회의 상품이라는 점이 클래식이 지금을 살아가게끔 하려는 노력을 돋보이게 했고 그 인간미 넘치는 노력의 모습에 자연히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부끄럽지만 책을 읽지 않고 살았다. 이제야 책이 몹시 궁금해졌다. 그 책이란 고전, 문학과 같은 분야를 일컫는데 지금껏 이런 책을 읽고 싶어도 포기하는 경우가 난무했다. 얕은 수준의 독서는 깊은 사고를 경험하지 못하게 했고, 글을 쓰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자연히 생각을 필요로 하는 책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다. 올 초 나에게 고전에 대한 호기심을 피운 글이 오늘의 클래식과 맞물리는 것 같아 반갑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 <읽다> 김영하 작가   


결국 고전이란 그 형태가 음악이든, 책이든, 고귀한 메시지를 시간을 관통하여 그 시대의 기법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필사 끝에 재연된 음악이 재즈나 팝 같은 현대 장르에도, 한국방송 불후의 명곡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는데 이 역시 신선했다. 그렇게 다양한 해석을 왜 이렇게 놓치고 살았을까. 이 와중에 절로 디즈니가 떠올랐다. 디즈니의 작품을 즐기는 나에게 이 세계는 훗날 고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커진다. 어릴 적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만났던 세상이 내가 엄마가 되니 4D로 재탄생하고 있다. 입체감 있는 영상과 세련된 음악, 화려한 기법으로 만든 가상과 현실 속 인물의 조합은 다시 그 작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멋지게 탄생한 작품 속에 놓치지 않는 동심의 메시지가 어른이 되어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시대에 따라 해석되어 계속해서 재탄생하면서 원래의 고귀한 메시지를 이어가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lVqNI6qP1ms


얼마 전 각별한 이웃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영상이다. 디즈니 OST를 메들리와 아카펠라로 재해석한 것인데, 들으면 들을수록 더 행복해지기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께도 추천하고 싶다. 끝에 나오는 곡, 'Try everything'은 오늘 나에게 더 깊이 들어왔다. 그래 그렇게, 용기를 내고 모든 걸 해보는 거다. 어떤 음악 장르든, 어떤 곡이든 체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갖게 될 깊이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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