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치찌개 해줄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맛있을

by 시샘달 엿새

아아 or 뜨아, 물냉 or 비냉, 부먹 or 찍먹, 짜장 or 짬뽕, 고기 or 채소.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 마냥 알고 싶어서 그에게 틈만 나면 이런 질문을 했었다. 결정을 잘 못 해서 그때그때 달랐던 나의 취향과는 달리 생각보다 확고한 그의 대답에 놀라울 따름이었고 이러한 모습에 자꾸 더 끌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된장찌개가 좋아 아니면 김치찌개가 좋아?”

역시 둘 다 좋았던 나는 그의 대답도 비슷할 거로 생각했는데

“김치찌개!”

라는, 단호박 같은 답변에 이내 할 말을 잃었고 앞으로 김치찌개를 훨씬 많이 끓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김치찌개는 김치만 넣고 끓이는 찌개가 아니었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김치찌개에 관한 연구를 숱하게 해왔지만, 이상하게 끓이면 끓일수록 갸우뚱해지고 엄마의 맛이 그리워지곤 했다. 참다 참다 물어본 엄마의 비법은 조미료가 좀 들어가야 그 참맛이 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껏 내가 이 맛에 취했다는 사실에 사뭇 놀랐었다.



자, 그럼 최후의 비법도 알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김치찌개를 파헤치기 시작해보았다. 얼려놓은 삼겹살, 고춧가루, 마늘, 파, 그리고 우리 집 김치, 찌개가 달아지니까 양파는 안 들어가고 또 뭐가 있더라. 역시 집밥 백 선생님도 찾아보고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비법으로 나만의 김치찌개를 시작했다. 얼음 덩어리인 삼겹살에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넣고 볶다 보니 냄비가 타고 솟아오르는 연기에 기침과 눈물이 절로 나왔다. 여기에 김치까지 볶다가 물을 넣고 팔팔 끓이다 다진 마늘과 김칫국물로 간을 맞추고 됐다 싶으면 마지막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었다. 이렇게 신혼 1년 차까지 끓였는데 문제는 애꿎은 냄비만 망가지고 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점차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김치찌개를 잊고 살다가 결혼 후 첫 김장김치를 먹어 본 그가 갑자기 김치찜을 제안했다. 이 맛난 김장김치에 돼지고기를 넣어서 푹 끓이면 맛있을 것 같다고. 온전히 김치 맛에 의지한 결과 그 맛은 가히 예술이었고 높은 입맛을 보유한 그에게 공깃밥 세 그릇을 선사했다. 그렇게 잘 익은 김장김치로 만든 김치찜을 응용하여 나만의 김치찌개를 확립했다. 포인트는 심플하게, 그러면서 맛은 살리는 그런 김치찌개다.




“오늘은 오빠 좋아하는 김치찌개 해줄게.”

수육용 앞다릿살이 조금 남아 있어서 재작년 묵은지로 찜 아닌 찌개를 만들 작정을 했다.

돼지고기는 조금 큼직하게 숭덩숭덩 썰어놓는다. 반드시 생고기로, 얼었다 녹은 고기는 그 맛이 줄어든다. 묵은지는 반쪽 정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는다. 신맛이 강할 것 같아서 양파 1개도 썰어놓고 대파도 준비했다. 여기에 수육을 보관했던 그 육수로 활용했고, 때에 따라 생수나 멸치육수도 괜찮다.



커다란 냄비에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넣고 육수를 찰랑찰랑하게 붓고 센 불로 끓인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썰어놓은 양파를 넣고 20분 정도 더 끓인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와 집안의 모든 방까지 닿을 것이다. 고기가 익으면 맛을 보고, 간이 부족하면 다진 마늘과 김칫국물을 조금 넣어 뭉근하게 끓인다. 다시 맛을 본다. 이번에는 나의 그를 소환했다. 잘 익은 고기와 김치를 한 조각 얹어 국물을 식혀 한 입 들게 했다. 답은 이미 정해졌고 님은 말씀만 하라는 눈빛을 찌릿하게 발사했다. 그냥 맛있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그래, 오케이. 색깔이 다홍빛이 되고 김치가 흐물거려서 찌개가 정말 완성된 것 같다면 송송 썬 파를 넣고 불을 끈다.

갓 지은 윤기 나는 쌀밥에 오늘의 김치찌개만 있다면 뚝딱이다. 여기에 달걀프라이와 김도 어울린다. 역시 오늘도 심취했다. 맛있게 들어주는 그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김치찌개란 자고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보글보글 끓으며 우러나는 그 깊어지는 맛에 간헐적으로 단식하며 살자는 내 의지도 흔들리지만, 더 맛있는 내일을 기약하기로.




그대 좋아하는 김치찌개

한 솥 끓여

두고두고 먹어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대는 맛나게 드시네요.

행복은 여기 있네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맛있을 거예요

더 사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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