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처음으로 아팠을 때
일요일 새벽 5시. 말도 못 하는 아기가 날 깨우는 손길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힘없는 아기의 손길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예감을 안겼고, 아이 몸에 닿은 내 손은 그 예감이 직감으로 변했음을 확인해주었다. 어젯밤까지 날 짓눌렀던 고단한 피로는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삐-’ 기계음은 캄캄한 밤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이윽고 펼쳐지는 새빨간 숫자-39.3-은 내 온몸을 주체할 수 없게 떨리게 했다.
찾아야 했다. 설마 하면서 보관은 했지만 단 한 번도 뜯지 않길 바랐던, 해열제를 찾아 설명서를 읽었다. 지금 10kg 정도니까 3.5mL. 잘 보이지도 않는 눈금을 찾아 작은 병에 약을 옮겨 담았다. 거부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작은 몸을 최대의 힘으로 저항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지만 울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약을 먹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아기의 오열로 벌어진 입안에 붉은 액체를 억지로 넣었다. 부디, 부디 괜찮아지기를. 그렇지 않다면 이 새벽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는데 울다 지친 너는 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새벽과 아침 사이 몇 번이나 기계음을 들으며 체크한 숫자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수건으로 닦았지만 소스라치는 놀람만 주고 아기의 잠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조금씩 숫자가 낮아지는 것 같았다. 한숨을 돌리고 우리도 잠을 청했다. 늦은 아침 아기의 모습이 괜찮아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다시 숫자가 치솟았다. 빨간 화면과 삐 소리는 우리를 또 떨리게 했고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고열은 닷새간 지속할 수 있다는 말과 바리바리 약봉지만 챙겨 집에 왔다.
다시 밤이 되었다. 약을 먹었는데도 숫자가 심상치 않다. 옷을 벗기고 이마에는 물수건을 얹었다. 약에 취해 아무 힘도 없는 아기를 보니 오늘 밤이 너무나도 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셋은 깊은 새벽을 지나고 있었다. 다시 적막을 깨는 소리와 빨간 불이 들어왔다. 몸은 불덩이인데 손발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토록 참아왔건만, 숫자 -40.4-에 내 눈물이 아기의 뺨을 타고 흘렀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기가 잘못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당장에라도 병원에 달려가야 할 것 같았지만 대기가 많다고 고생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이성을 차렸다. 그래, 병원에서 열 경기를 주의하고 고열이 나도 침착하게 대처하라는 말과 물을 많이 마시게 하라는 말이 기억났다. 다시 아침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까지 날 울렸던 그 체온계의 빨강색은 노란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불덩이가 미온이 되었을 때 널 지켜준 이 세상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그렇게 하나같던 사흘이 지났다. 약은 더 세졌기에 아기는 쓰러져 잠만 잤는데, 다시 날 깨우는 느낌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엄마, 무-”
목이 말랐구나. 재빨리 물을 챙기니 두 잔이나 말끔히 비웠다.
“엄마, 맘마-” 배가 고프구나. 정말 나아가는구나. 응, 알겠어. 우리 아기 가장 좋아하는 미역국 끓여줄게.
냄비에 참기름을 조금만 소고기를 살짝 볶는다. 겉면이 익으면 불린 미역도 함께 넣어 볶다가 국간장 반 큰 술을 넣고 물을 붓는다. 오늘은 특별히, 더 정성스럽게 새로운 생수를 열어 넣었다. 냄비가 끓기 시작하면 다진 마늘 조금을 넣고 꽃소금으로 부족한 간을 하면서 미역국을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지 않아야 더 맛있는 것 같다.
고기도 질기지 않고 간도 적당히 맞았다. 갓 지은 밥과 네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담아 밥을 먹였다. 며칠간 먹은 거라고는 초콜릿과 물뿐이었는데, 부디 잘 먹고 기운 차리기를. 아기는 금세 밥과 국을 비웠고. 평소 즐기던 국그릇 원 샷을 내 앞에서 선보였다. 하나도 남기지 않은 음식이 너에게 생기를 준 것 같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너무 힘들었을 텐데 잘 이겨내줘서 고마워. 널 처음 안았을 때 너에게 했던 말, 아프지만 말아줘.
2018년 시월. 엄마가 된 지 20개월 만에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