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2023.05.29
70대 이상 어르신들과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니터와 본체, 별도의 키보드와 마우스로 구성된 PC보다 스마트폰, 아이패드, 갤럭시탭 같은 태블릿이 훨씬 익숙하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은 의외로 스마트폰에 익숙하다. 70대 이상 남성의 97%, 여성의 69%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어르신들이 유튜브를 즐겨 보는 것도 이미 상식.
하지만 PC는 사정이 다르다. 어르신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PC 사용 강의를 해주는 문화센터에서 강사가 “인터넷 창을 여세요”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주뼛주뼛 일어나 강의실 창문을 연다는 우스갯소리가 한창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어린이들도 PC를 앞에 두고 “컴퓨터를 켜세요”라고 하면 본체는 생각지도 못한 채 모니터를 한참 만져보다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태생으로 30대 중반에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인 이후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IT(정보기술) 문화는 슬랙이나 노션, 피그마 같은 각종 협업 툴이 아니라 클라우드 환경이었다. 그러니까 업무를 범주화해 폴더를 만들고 그 안에 다시 세부 폴더를 만드는 디렉터리 체제가 아니라 클라우드에 파일을 ‘제멋대로’ 생산해 필요할 때면 그냥 검색해서 찾아 쓰는 환경 말이다.
‘제멋대로’라는 단어가 손끝에서 저절로 나오는 걸 보니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어떻게든 사용은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체제만큼 편할 리 없다. 나 같은 밀레니얼(M) 세대 중에는 PC에 더 익숙한 사람과 Z세대처럼 태블릿과 클라우드에 더 익숙한 사람이 섞여 있다.
새로움이란 상대적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긴 하지만 이전 기술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점은 조금 뒤에 오는 만큼 Z세대도 프린터처럼 클래식한, 하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IT에 적응하느라 애쓴단다. 무언가를 종이에 인쇄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다.
서로의 기술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다 보면 여기에도 사회적인 여유, 그리고 서로의 기술을 두루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업무 환경의 최첨단에서 조금만 비켜나 있어도 금세 뒤떨어지는 세상이다. 한 번 뒤떨어지면 다시 합류하기 힘들다.
경제활동 중인 세대 모두가 인터넷을 이해하는데도 벌써 중요한 분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MZ에서도 챗GPT나 미드저니 같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사람, 가끔 참고하는 사람, 굳이 마음먹지 않으면 접할 일 자체가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 꼭 지금 일이 아니더라도 Z세대 또한 막 태어나는 세대와 세대 차에 시달릴 게 당연한 미래 아닌가.
순식간에 새것에서 새것으로 바뀌는 단 하나의 기술만이 지배적이지 않은 사회, 그게 어렵다면 너무 힘들지 않게 이 기술문화에서 저 기술문화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완충 장치를 고안할 시점이다.
(202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