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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an 04. 2024

(칼럼) MZ의 슬기로운 학교 생활

2023.08.06 선생에게 맞고 학생에게 맞고

교실에서 폭행당하는 교사 문제가 뜨겁다. 교사들은 얼마 남지 않은 선생의 권위가 마저 바스러질까 봐 냉가슴만 앓다가 교직을 그만두거나, 조용히 세상을 등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사실 MZ들은 몇 년 전부터 공공연하게 알고 있던 일이다. 2023년 현재 갓 교사가 된 세대가 바로 우리 MZ다.


서이초 사건이 있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교사가 된 친구들에게 연락해 무사함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들한테 두들겨 맞았는데, 이제는 학생들한테도 맞고 사네. 위아래로 얻어터진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맞는 것이 당연했다. 그건 ‘체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야만적이었다. 양말을 벗게 해 발바닥을 때리고, 하복 소매를 끌어올려 팔뚝 안쪽 여린 살을 때리고, 책상에 무릎 꿇리고 허벅지를 때렸다. 우리 바로 윗세대는 혁대와 슬리퍼로도 얻어맞고, 피를 보는 일도 잦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학교에 찾아와 진상과 갑질을 일삼는 학부모들도 MZ다. 귀한 자녀가 ‘10여 년 전의 나’처럼 모욕적 폭행을 당할까 불안해 선제 대응을 하다 보니 선을 넘었다고 한다. 물론 윗세대는 코웃음을 친다. 윗세대의 부모님들은 더 거친 환경에서 지냈음에도 학교를 귀하게 여기고 교사를 존중했단다.


아주 어렸을 때 놀다 보면 느닷없이 동네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날아와 머리를 때리곤 했다. 부모님은 회초리를 드셨고 회사 동료와 집으로 회식 3차를 온 아버지는 ‘부장님한테 조인트 까였다’는 말씀도 하셨다. 1980년대, 1990년대야 뭐 어디서나 폭행이 벌어졌는데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때린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을까 싶지만 지금은 사회가 변해서 그런 일이 잘 벌어지지 않으니 부모들이 민감한 것이다.


다만 그 민감함이 ‘나와 내 가족이 받을 불이익’에 그친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스럽다.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폭행을 행사한 사람은 재사회화가 되기 전까지 공동체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다. 합의가 이뤄지면 관리 체계, 그러니까 ‘철학이 담긴 시스템’이 생기기 마련인데 바로 그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다.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은 유령 같았다. 우리 학교 교장실은 늘 비어 있고 잠겨 있는데 미국 드라마를 보면 말썽꾸러기들이 어찌나 뻔질나게 교장실을 드나드는지 신기했다. 교사 친구들에게 “교장이 회사로 치면 대표인데 나서 주지 않냐, 작은 회사는 외부 거래처와 큰일 생기면 대표가 협상한다”고 하니까 교장은 생각도 안 났단다. 교장 개인의 탓만도 아닌 것이 도대체 시스템이 없다고 분개한다.


부모가 돼도 교사가 돼도 MZ에게 학교란 참으로 변치 않고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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