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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사랑을 벼락처럼 발명하다

2024.05.31 | 결혼하기도 전에 이혼하고 싶었던 청년

by 정인

2016년 말, 아니면 2017년 초. 배우자님과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다. 바 형태의 술집에 나란히 앉아서 몽롱한 눈빛을 하고 '돈과 나이는 많고 좋은 성격과 외모는 없어서 인품이 왜곡된 남자를 아무나 잡아서 결혼한 뒤에 이혼해 버릴 거'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처음으로 길을 잃었던 때였다. 나는 가난하고 내가 짓지 않은 빚이 많고 곧 부양의 무게가 떨어질 것이 보이는데 미래는 공장 오폐수가 삼십 년은 흘러 들어간 연못처럼 어둡고 탁했다. 삼십 평생에 걸쳐 내 인생의 연못에 쏟아부은 것이라곤 가죽을 씻어내느라 검게 부패한 독극물 뿐인 것 같았다. 서른까지야 이를 악물고 살아왔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KDI라는 안정적인 첫 직장을 때려치운 앞에는 안개 뿐이었다.


그럼에도 평범하게 행복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내 자리를 찾아가고 싶었다. 평범한 것은 내 자리일 수가 없었다. 평범이라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까다롭게 재단해 놓은 무염지대인지 양가 부모님 기체후일향만강하신 것들이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갈 수도 없고, 행여 운이 좋아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불편하고 불쾌할 것이 자명했다.


그러고 나니 이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이혼이 하고 싶었다. 사회의 가장 커다란 제도에 한 번은 편입해야겠다고, 그게 '실패'일지언정 결혼 제도와 관계를 맺을 만큼의 능력은 있다고 증명해야겠다는 오기가 치밀었다. 그러고도 사회에 옳게 정착하지 못하면 그때는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 몇 마디를 듣고서 배우자님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결혼은 신성하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사랑이 벼락처럼 찾아올 거라고. (본인은 신성하지 못한 잡놈이라서 결혼을 더럽힐까봐 비혼주의자인 것이라고) 그날은 몇 마디 더 하지 않고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러고서 1년 간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1년 후, 나는 첫 자살사고를 겪었다. 무사히 살아나오고 나서 sns에 생존 신고를 했다. 무척 놀라고 걱정했다는 배우자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몇 번 더 만난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그래야 서로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사랑의 발명>이라는 시를 떠올렸다. 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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