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기) 지나간 인연에게 고마워하며

2017.02.05 |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던 걸 이젠 알아

by 정인

예전에 애인이 날더러 참 싸가지없다고 했다. 네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알 수 있다고, 네가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는데도 우리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곁에 있는 거라고. 최근 너무나도 뼈저리게 다가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때 우리는 얼마나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가. 공기 중엔 질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는 것처럼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를 해안가에서 다이아 바늘을 발견한 마냥 흥분해서 하기도 하고, 누가 들어도 당신이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당신의 특별함으로 포장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좋은 것이다. 누가 진리를 모르며, 누가 우리들이 평범함을 모른단 말인가. 서로 대화하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참 특별하다고, 나는 세상의 원리와 우리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을 위해 당신을 사귀고,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아닌가.


거기다 대고 따박따박 일반론과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던 나는 사실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인생을 나의 인생과 버무려 따듯해지기보단 나의 세계를 정확히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정말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 자체에 흥미가 있다면, 오, 정말 언어로 표현되는 내용과 그 정확성은 전혀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앞의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것을 내게 어떻게 전달하는지, 그걸 전달하는 당신의 눈빛과 손짓과 몸짓과 기분이 어떤지이다. 이걸 좀 더 이르게 깨달았다면 나는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이긴다. 나이를 먹을 수록 그렇다. 마음을 닫고,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결국 세상에 빚을 지며 살아가게 된다. 빚쟁이가 여유로운 것 봤나. 조급한 사람이 품위있는 것 봤나. 품위 없는 어른이 주변에 어떤 존재인지 잘 알지 않나.


(2017.02.05)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의식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