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봉이 필요해

by 테리업

우리 집은 더럽다. 큰방 식탁 위에는 정체 모를 액체 자국, 국물이 눌어붙은 프라이팬, 사용한 수저들이 널려있다. 컵 안에는 언제 담았는지 모를 물이 남아 있다. 바닥은 널브러진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다. 부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싱크대 안은 음식물과 플라스틱 용기, 그릇이 뒤엉켜있다. 그곳은 곰팡이로 오염되었다. 바닥에는 깨가 잔뜩이다. 우리 집엔 깨가 없는데? 자세히 보니 깨가 아니라 깨알 같은 벌레들이다. 한숨이 나오는 이 상황에 내게 요술봉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휘두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방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겐 요술봉이 없다.


요술봉을 향한 나의 갈망은 7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절은 마법 전사 시대였다. 아이들은 개인 요술봉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요술봉이 비싸고 쓸데없다고 사주지 않았다. 친구들은 요술봉을 들고 변신 놀이를 한다. 커다란 리본이 달려있고 주렁주렁 보석이 달린 예쁜 요술봉. 요술봉이 빛나는 것만큼 친구들도 빛난다. 내 손은 허전하다. 나만 놀이에 제대로 못 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노점상을 지나가는데 한 반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붉은색 하트 보석이 있었고 그 옆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의 반지와 똑같이 생겼다. 내가 눈을 반짝이며 이거 너무 예쁘다고 가격도 단돈 천 원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가 하나 사주셨다. 이제 나도 마법 전사의 정식 일원이 되리라. 그러나 그 소중한 반지를 산 지 6시간 만에 잃어버렸다. 반지가 헐렁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에서 빠진 것 같았다. 반지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후 친구들 사이에 껴서 놀기가 더 어려웠다. 변신 놀이를 하면 괜히 재미없다며 집으로 갔다. 집에 가도 마땅히 할 것 없었다. 잃어버린 반지가 더 아른거릴 뿐이다.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동그라미, 뒤집힌 삼각형. 삼각형 밖에 세 개의 작은 원을 그리고 색연필, 사인펜으로 예쁘게 칠했다. 종이가 구겨지지 않도록 코팅했다. 이것은 내 요술봉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당당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진짜 요술봉을 가질 수 없었지만,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요술봉이 없어서 마법 전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꼭 뭔가가 있어야 친구들이 나를 더 주목하고 나와 같이 놀아줄 것 같았다.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빛나 보였던 게 아닐까. 요술봉이 있든 없든 친구들은 나와 똑같이 놀았다. 온전히 가지고 보니 알았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건 요술봉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걸. 나는 그 뒤로 엄마에게 요술봉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그 요술봉 지금은 가지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 가끔은 내가 마법을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손이 아니라 마법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은 날이 있으니까. 50L 쓰레기 봉지 두 개가 가득 찼다. 나는 이것을 문밖에 내놨지만, 여전히 집 안은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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