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허물이 내 안에 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비명을 지른다. 세상 앞에 벌거벗겨져서 심판을 받고 싶다고. 그리고 마침내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내가 자신을 다시 쳐다볼 때까지 목이 쉬도록 호소했다. 내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이야기. 잠시 주인공이 된 자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이야기를 지금 고백하려 한다.
초등학생 저학년 어느 때쯤. 오락실 게임 한 판 100원, 빅파이 100원, 초코파이 200원, 새콤달콤 200원, 새우깡 500원 하던 그 시절. 내가 가진 천 원은 일주일을 보내기엔 턱없이 적은 돈이다. 동네 아이들의 사정은 다 비슷했던 것 같다. 용돈을 많이 받는 친구는 오락실의 왕이다. 아이들은 왕에게서 과자 몇 조각과 게임 코인을 받는다. 제일 인기 많은 건 게임 잘하는 친구다. 보통 그 친구가 돈이 가장 많다. 게임도 못하고 돈도 없었던 나는 동네 친구들의 관심 밖이었다.
어느 날 내게 행운이 찾아왔다. 길에서 5천 원을 주웠다. 나는 경찰서에 가져다 드렸고, 칭찬받았다. 경찰 아저씨는 포상이라며 나에게 돈을 돌려주셨다. 그 돈은 엄마의 지갑 속으로 들어갔다. 용돈을 다 쓰고 엄마에게 조금만 더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자비는 없다. 그 5천 원 그냥 내가 할걸. 며칠 뒤, 엄마가 비상금을 냉장고 위에 두었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데 만 원짜리 한 장이 내 발 앞에 떨어졌다. 엄마에게 만원을 주웠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보고 쓰라고 했다. 내가 밖에서 주웠다고 오해한 것 같았다. 집에서 주운 것이라고 말할지 잠시 고민했다. 엄마가 쓰라 했으니까 써도 되겠지! 양심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만 원을 들고 오락실에 갔다. 친구에게 돈을 주웠다고 같이 놀자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아이가 자기도 끼워 달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말 걸어도 잘 대꾸도 안 하던 애였다. 그 아이와 내심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끼워줄까 말까 그 아이를 놀리다가 같이 놀기로 했다. 오락실 옆 슈퍼에서 간식을 사 와서 나누어 먹었다. 친구가 게임에서 졌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조작기 옆에 동전탑을 쌓아주었다. 주머니가 두둑해서인지 게임 구경이 더 재미있었다. 오락실의 친구들은 내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애교를 부렸다. 평소 누려보지 못했던 관심을 받아서 좋았다.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다. 문방구에 가면 저렴한 간식이 많으니까 많은 친구와 나눠 먹을 수 있다. 훔친 돈으로 베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지 추종자들에게 행하는 자선이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고, 내 뒤로 아이들이 줄 서서 따라왔다. 내게 홀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돈은 점점 줄어들수록 친구들의 최면도 한 명씩 풀리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내가 처음 말 걸었던 친구뿐이었다. 손에 돈 500원만 들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대문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네가 주운 돈이 비상금이냐고 엄마가 물었다. 내가 나가고 나서 비상금을 다시 세어보니 만원이 모자랐다고 했다. 엄마의 얼굴에서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주운 돈이 맞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네가 도둑이냐며 소리를 지르고, 내 몸을 붙잡아 나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나는 그대로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골목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이 몇 명 보였다. 이제 나는 동네에서 도둑이라고 낙인찍힐 것이다. 만 원이라는 날개는 수치심 앞에서 녹아내렸다. 반나절의 주인공은 하늘에서 처절하게 추락했다. 그 이후 도둑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나는 더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도 잘하고,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교통질서도 잘 지켰다. 누군가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면 거절도 잘 못했다. 나는 이미 나쁜 사람인데 더 나빠 보이기 싫어서. 나의 착한 아이 증후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강박적으로 하던 행동들은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아 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추락한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죄수가 되어 발목에 족쇄를 차야 했다. 그 족쇄는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었고, 내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제했다. 착하다는 기준은 내 멋대로라서, 내 행동이 타인에게 선하게 다가갔을지는 모르겠다. 내 안의 죄수는 나를 따라다닌 족쇄가 부끄러워 오래도록 숨어 있었다. 추락 후 약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나를 받아들일 줄 몰랐고, 나 자신이 견디기 어려웠다. 비난받더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착하지 않지만 악하지도 않다. 그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 고백은 여기까지다. 나는 이제 족쇄를 풀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