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무거워

by 테리업

생각이 많다는 말, 그런 말을 들으면 새삼스럽다. 내가 생각이 많은 건 어렸을 적부터 쌓아온 유구한 역사인데. 엉뚱한 상상, 꼬리를 무는 질문이 가끔 힘들지만, 이건 나의 일부이자 나의 전부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생각을 강박적으로 하게 된 것 같다. 그때의 기억, 이미 묵어버린 기억을 하나 꺼내보려고 한다.


2015년 1월. 아빠의 4번째 간암.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논하기 위해 대학 병원에서는 여러 교수가 모였다. 나는 아빠의 보호자로 동행했다. 간담췌장과, 소화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모였다. 3번의 간암 치료 시술을 담당했던 영상의학과 교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의자 끄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기침 소리만 들리길 몇 분. 한 교수님의 목소리가 작은 소음을 뚫었다. 이번에는 방사선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모두가 동의했다.


아빠는 약 두 달에 걸쳐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치료 마지막 날, 차트를 넘기던 교수님께 내가 여쭤보았다.

“아버지 간암은 치료가 잘 되고 있나요?”

“지금은 치료 과정을 논할 때가 아니에요.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막는 거예요. 암과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 달 뒤에 경과를 볼게요. “

교수님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암을 없애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료 날을 2주 앞두고, 아빠가 야밤에 배를 강하게 움켜잡고 새우처럼 웅크렸다. 아빠는 끙끙 소리를 내면서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동생과 엄마는 아빠를 부축하고, 나는 택시를 불렀다.


당시 우리 지역의 대학 병원 두 군데가 파업 중이었다. 그 때문에 아빠가 다니는 병원에 환자가 몰려서 병동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응급실 밖은 구급차 몇 대가 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의사를 찾는 사람들을 지나 겨우 침상 한 군데에 자리 잡았다. 한참 뒤에 의사가 와서 주사기를 아빠 배에 꽂아 물을 뺐다. 수액 걸이에 금식표가 붙었다. 겨우 한숨 돌렸다.


아빠와 응급실을 잠시 나왔다. 병원 로비에는 하얀 조명만 가득 켜져 있었다. 아무도 없고 밤이라 그런지 으슥했다. 편의점을 지나는데, 유리벽에 ‘화이트데이’라고 쓰인 커다랗고 빳빳한 종이가 붙어있었다.

“곧 화이트데이네.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사탕 사줘야겠다.”

“아빠, 아빠는 못 먹는데, 사탕은 말라고요?”

“그래야 나를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주지. 원래 그런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빠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응급실에 돌아왔다. 아빠가 자리에 앉아서 코를 닦았다. 휴지에 피가 살짝 묻었다. 아빠는 코피 잘 안 흘리는데.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의사 선생님께 보고하겠다고 했다. 그저 기다리라는 말뿐. 우리 아빠는 급한 환자가 아니었나 보다. 문득 그분들께 사탕이라도 드렸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 3일 차, 화장실 간 아빠가 자리로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드신 게 없으니 오래 걸리실 것 같기도 했다.

묵직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누군가 넘어진 채 반응이 없었다. 의료진들이 뛰어와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혈압을 재고 눈꺼풀을 들어 동공을 확인했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

아빠를 둘러싼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갔다. 아빠가 눈을 떴다. 나는 아버지를 일으켜 침상에 눕혀 드렸다.

“아프다. 병원 가자. 택시 불러라.”

“아빠. 여기가 병원이에요.”

아빠는 지금 이곳이 병원인지 몰랐다. 간호사가 아빠 손가락을 찔렀다. 이제껏 한 번도 안 하던 혈당검사를 했다. 한자리 숫자가 나왔다. 한번 더 찔렀는데 수치가 똑같다.

“환자분.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 어디예요?”

간호사가 아빠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빠는 무어라 중얼거릴 뿐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 첫 간암 발병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소식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친척들이 병원으로 하나둘씩 들어왔다. 한 친척분이 의사를 붙잡고 한참을 대화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의사는 아빠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우리 가족에게 말했는데 그 신호를 우리가 눈치 못 챈 거라고 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지 3일이 되었을 때, 의사가 우리를 불렀다. 아빠의 혈압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고, 힘이 다하셨다고, 이제 보내드려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의사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아빠를 깨워서 집에 갈 거라고 했다. 아빠는 눈을 가만히 감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엄마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지만, 입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 아빠 씻지도 못하고 답답할 텐데 집에 가서 몸 닦아줘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곤 겨우 손을 들어 아빠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아빠의 뺨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중환자실은 아빠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지독한 알코올 냄새로 가득했다. 아빠는 뭐가 그리 급한지, 유언 하나 남기지 않고 우리를 떠났다.


23살의 나는 의사들의 뜻깊은 그 의중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무얼 물어봐야 하고 무얼 알아야 했을까.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수십 개의 칼날처럼 나에게 박힌다. 그 목소리는 형체도 없이, 멈추지 않고 마음속에서 반복된다. 그 목소리는 친척이기도, 내가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 자신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그 의도를 곱씹어본다. 과오를 똑같이 반복하기 싫다. 그런 내 마음을 내 모든 세포가 안다. 몸에는 항상 힘이 들어가 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시간이 지난 후 망각이 일어나는 것은 뇌가 살려는 발악이다. 하지만 망각은 없다. 교수들의 종이 넘기는 소리, 침상에 앉아 눈을 감은 아빠, 끊임없이 재생되는 과거. 생각이 폭풍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미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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