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감 있는 일상의 소리는 기쁜 마음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는 법이다.
“하나, 둘, 셋,...,55개, 100원짜리 5,500원”
쨍그랑 하나, 쨍그랑 둘
동전을 세는 소리가 경쾌하다. 퇴근을 5분 앞두고 접수실에서 현금 정산을 했다. 엑셀에 나오는 금액과 금고 금액이 일치한다. 오늘도 클리어!
퇴근까지 3분 남았다. 오늘은 퇴근 후에 무얼 할까? 싱글벙글한 표정을 감추기가 어렵다.
쿵 쿵 쿵
발소리가 크게 나더니 갑자기 그쳤다.
“테리쌤."
“아이고 깜짝이야.”
옆을 돌아보니 원장님이 서 있다. 환자 치료를 하다 말고 달려오신 것이다. 원장님 표정이 심상찮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높아지고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원장님은 나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동전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동전 긁히는 소리까지 다 나요. 돈 좀 조용히 세세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자기 할 말을 끝낸 원장님은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다시 환자에게 돌아갔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3년을 이 병원에서 일했지만 처음 들은 말이었다. 병원 구석구석에 스피커가 있어서 내 동전 소리가 송출되지는 않는다. 내가 동전으로 요란하게 다트를 한 것도 아니다. 도대체 내게 와서 동전 소리를 지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를 해고하고 싶으신 걸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잘리면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수많은 면접, 기약 없는 합격 발표! 상상만 해도 피가 마른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집에서 담요를 챙겼다. 원장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용히 동전을 세기 위함이다. 문득 내가 내는 소리가 그렇게 거슬렸는지 궁금해 동료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어제 제가 동전 세는 소리 들으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은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원장님이 저보고 돈 세는 소리가 시끄럽대요.”
선생님은 기가 막힌 표정이다.
“내가 여기 10년 일했는데, 그런 말은 처음이다. 얼마나 잔소리할 게 없어서 동전 소리로 트집을 잡을까.”
선생님은 신경 쓰지말라셨지만 나는 세심증 걸린 사람처럼 작은 것도 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원장님과 눈 마주칠 때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놀랐다. 문을 여닫을 때 조용히 확실히 닫았다. 물 마시고 컵 내려놓을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손에 힘을 주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손목에 너무 힘을 주는 탓에 뻐근했다. 통증이 꽤 오래갈 것 같다. 원장님 치료 한 번이면 훨씬 낫겠지만, 치료받았다간 통증은 사라질지언정 화병이 생길 것이다.
하나, 둘.
오늘도 집에 가기 위해 금고 안 현금을 맞추어보았다. 동전을 쥔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어서 하나씩 담요 위에 조심히 올려놓았다. 그 모습이 마치 보석 세공을 하는 것처럼 정교하다.
"어휴"
목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프다. 도대체 왜 나는 동전을 담요 위에 바둑판식으로 배열해야 하는가!
원장님이 접수실을 지나갔다. 곁눈질로 나를 지켜보았다. 나 모르게 보려고 한 것 같은데 이미 다 들켰다. 내가 담요 위에 동전을 올려놓는 것을 본 게 틀림없다. 그런데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다.
퇴근 시간을 알리는 나의 유쾌한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의 작은 기쁨은 없고 대신 온몸을 짓누르는 긴장감이 함께할 뿐이다. 병원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말이다. 그것만이 완전한 해방을 알리는 신호다. 하루하루 소음을 통제하고, 원장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전부 치운다. 원장님의 전속 하녀가 된 것 같다.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은 곧잘 깨지기 마련이다.
어느 날, 초진 환자가 왔다. 환자 분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환자분이 이 병원에 한 달 전에 왔었다고 했다. 환자 관리 프로그램에는 등록된 정보가 없다. 알고 보니 한 달 전 내가 동명이인으로 잘못 접수했다. 프로그램 조작 실수를 했나 보다. 내 큰 실수로 잘못 접수했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환자분과 원장님께 거듭 사과드렸다. 하마터면 병원에 큰 피해를 입힐 뻔했다. 이 일은 적어도 잔소리 일주일감인데 원장님은 이 문제를 크게 지적하지 않으셨다. 그 후 나는 내가 왜 실수를 했는지 곱씹어보고, 환자가 오면 두 번 확인하고 정보를 저장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런데 원장님의 잔소리 기준은 대체 뭘까?
나도 모르게 한숨 쉬었던 날 원장님은 내게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셨다. 평소에 직원을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이 아니어서 의아했다. 돌이켜보니 내 몸 상태가 최악인 날이었다. 이걸 내가 티를 냈나 보다. 친구가 나에게 그릇 깨겠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설거지 소리는 꽤 크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 그릇을 찬장에 올려놓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릇을 한 번씩 떨어뜨릴 때도 있다. 이외에 내가 내는 또 다른 시끄러운 소리가 꽤 많을 것이다.
오늘도 병원 문을 열고, 병원 청소를 했다. 원장님이 출근하셨다. 원장실에 들어가시자마자 나오시더니 출근하면 원장실 컴퓨터 먼저 꼭 켜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문을 꽝 닫았다. 아마 원장님도 자신의 소리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내는 소리를 원장님도 참다 참다 말한 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원장님은 내게 괜히 시비 거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예민한 사람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같은 실수를 또 해도 원장님이 한숨 쉬고 넘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원장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았나 보다. 아마 우리는 속으로 하는 생각이 같을 것이다.
“저 사람 또 저런다."